내가 이 연극을 관람할 예정이라고 하자, 관심이 생겼는지 캐스팅 정보를 인터넷으로 훑어보던 지인이 말했다.
“뭐야, 남자 배우만 잔뜩 나와?”
맞다. 이 연극은 그렇다. 역사 교사인 ‘린톳’을 제외하고는 남자 배우만 무대에 오른다.
이 연극은 영국의 배우이자 작가인 앨런 베넷(Alan Bennett)이 2004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진학을 노리는(우리로 따지면 고등학교 내에 따로 만든 ‘서울대 입시반’ 정도가 되겠다) 8명의 남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교실이 작품의 무대다. 서로 다른 교육관을 가진 선생, 헥터와 어윈 역시 남자다. 출연진에 남자 배우만 가득할 수밖에.
이들은 논술 시험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당연히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 연극의 제목이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인 이유다. 물론 역사 그 자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시각’을(그것이 전위적이거나 혹은 문제가 있는 시각이라고 하더라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입시에 먹히는 것은 그런 것들이니까. 산더미처럼 쌓인 그렇고 그런 에세이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되려면 “시험에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에 서게 된다. 일단 튀어야 산다.
연극에 등장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유명 대학에 많이 진학시켜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겠다’고 의욕을 불태우는 교장의 모습은 익숙하다. ‘진학이 교육의 목표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역시 그렇다. 즉 이 연극은 1980년대 영국 요크셔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도 이해하기 쉽다.
2013년 초연 이후 이번이 여섯 번째 무대일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심정적인 이해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젊은 남성 배우를 아홉 명이나 세웠으니, 이 중에 당신 취향이 하나 정도는 있겠지요’ 라는 연예 기획사 같은 노림수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연극이 몇 번이고 성공적으로 재연되는 있는 이유를 궁리해 본 까닭은 내용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구조는 간단하다. 성과를 내려는 교장과 약간은 몽상가적 기질이 있는 선생님, 그와는 달리 현실적 가르침을 주려는 교사와 아이들이 만드는 교실의 풍경은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게이 버전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감이 올 것이다.
하지만 옥스퍼드 역사학 전공자인 앨런 베넷(Alan Bennett) 답게 이 작품 안에는 영국 특유의 역사, 문화적 전통이 잔뜩 고여 있다. 셰익스피어는 기본이고 하우스만과 라킨, 오든 같은 영국 시인들의 작품이 대사로 인용된다. 아마 1980년대 (혹은 지금도) 영국의 고등학생들은 이런 작품을 배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설다.
1,2차 세계대전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 이곳은 영국이다. 세계 대전으로 나라가 초토화되고, 셀 수 없는 젊은이들이 죽어간 바로 그 영국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이들도 세계대전에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 부분이 연극에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아마 유럽사에 대해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빠르게 지나치는 대사의 절반도 제대로 흡수할 수 없을 것 같다.
카프카와 비트겐슈타인과 니체는 덤이다. 아, 유명한 영국 티브이 시리즈와 영화도 알아야 한다. 물론 종교개혁과 영국 국교회와 헨리 8세,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서도 알아야 무대 위의 배우들이 무슨 내용의 토론을 벌이는 것인지 이해가 된다. 즉 이 연극은 영국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유쾌한 작품이지만 그렇지 못한 관객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연극의 프로그램 북에 그런 설명이 나와 있을까? 있다면, 반드시 사전 정독하고 극장에 입장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혹은 이런 류의 작품을 제작할 때는 (국립극단에서 홈페이지 내에 무료로 프로그램북을 배포하는 것처럼) 배경 지식에 관한 사항을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19시 30분에 시작한 연극은 22시 50분에 끝났다.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무려 3시간 20분의 공연 시간이다. 놀랍게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관객석에 앉으면 내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대충 어떤 경로를 거쳐 입장하게 되었는지 감이 잡힌다. 오늘이 두근거림을 안고 이 연극을 찾은 첫날인지, 시즌이 바뀔 때 생각이 나 찾는 관객인지, 몇 번이고 회전문을 통과하듯 관람을 반복하는 경우인지 반응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아, 오늘은 이런 관객들이군, 저런 관객이 많군, 하면서……
하지만 연극 전 주의사항(요즘은 출연 배우의 목소리가 말한다)이 나올 때부터 웃음이 터지는 연극은 오랜만이다. 모르긴 해도 관객의 70퍼센트 이상이 몇 번이고 다시 찾은 관객들이었지 싶다.
연극의 배경은 1980년대 영국의 지방도시다. 백인만 사는 곳이 아니고,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무슬림과 유대인처럼 다른 종교를 지닌 학생들이 함께 섞인 곳이다. 줄곧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 경제 때문에 ‘대영제국의 영광’을 향수 섞어 이야기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며, 곧이어 등장한 마가렛 대처는 중산층 이하의 삶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지경으로까지 몰아넣을 예정이다. 교육은 어느덧 ‘성공의 계단 중 유일하게 남은 것’으로 전락하고 당연히 명문대 진학에 목을 매게 된다. 나중에 허무가 밀려오더라도 말이다. 린톳 선생님은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 관해 “더램은 피자가 제일 기억이 나네요.”라고 말하며 대학 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지만, 현실에서는 제자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말하자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수도원, 오래된 도서관…… 오래되고 차가운 돌 냄새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죠.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 옥스퍼드에 갔더라면 전혀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라고 중얼거리는 헥터 선생님의 말속에 이런 회한 같은 것이 담겨 있다. 물론 헥터 선생님은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키팅 선생님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상하고 지적이지만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삐뚤어지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 린톳 선생님이 소리 지르는 것이 이해가 된다. 린톳 선생님 파이팅!
하지만 그런 ‘용서받지 못할 죄악’ 앞에서도 작가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도출한다. 그런 일을 당해보니까, 여자들이 남자들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들까 이해된다, 같은 식으로. 그리고 린톳 선생님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선언한다.
“역사는 지난 5세기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는 다양한 남성들의 무능력에 주석을 다는 일이야. 역사가 뭐야? 역사는 양동이 들고 남자들 뒤를 쫓아가면서 청소해주는 여자들인 거지.”
중간중간 독백을 통해 상황을 설명해주는 ‘스크립스’가 극을 이끌어가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터뜨리는 것은 분명 ‘린톳’ 선생님이다. 그래서인지 남성 배우들이 한가득 출연했음에도 오히려 기억에 남은 것은 린톳 역의 이지현 배우다. 덕분에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영국의 문학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극 안에 언급되는 작가들과 역사에 대해서는 사전 공부를 하고 입장하라고 다시 한번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그것만 하고 나면 이후에는 작가가 쏟아내는 귀에 쏙쏙 박히는 명대사들에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될 것이다.
헥터 선생님은 포스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독서에서 최고의 순간은 나만 그렇다고 느꼈던 것을 책을 보다가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이 연극은 당신만 그렇다고 느꼈던 것을 무대 위에서 발견하는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내가 보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