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웨스트

-대학로 TOM 2관

by 지안

무대는 잘 정리된 거실이다. 창가에는 커다란 화분들이 늘어서 있고, 책상과 소파가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으로는 여러 가지 도구가 제법 잘 갖춰진 주방이 보인다.


그 안에 두 남자가 앉아 있다. 5년 만에 얼굴을 맞댄 사이다. 형인 ‘리’는 거친 환경에서 투견이나 절도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아이비리그 출신인 동생 ‘오스틴’은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두 사람 중 누구의 집도 아니다.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난 어머니의 집이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그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어머니는 돌아올 것이다. 굳이 어머니의 집을 배경으로 한 이유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가족’에 관한 것이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식구들에 관한 이야기다.




Sam Shepard가 쓴 이 작품은 1980년에 초연되었다. 벌써 4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가족’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소재를 풀어가고 있다. 가족이란 세상 누구보다 상처를 주는사람들이기 때문이다. 40년 전에도, 지금도 그 상황은 마찬가지다. 가깝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고, 그렇기에 상처받기 쉽다. 화가 나거나 짜증 난다고 쉽게 돌아설 수도 없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천국 같지. 겉 하고는 완전히 딴판인 그런 집이야. 아늑한 불빛 아래, 사방은 멕시코 타일로 돼 있고, 스토브 위엔 구리 주전자들이 걸려 있는, 꼭 잡지에 나오는 그런 집 같아. 저런 데서 태어나봤으면 싶은 그런 집이었어.



리는 타인의 가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형인 리는 다른 사람의 집을 들여다본다. 물건을 훔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부럽기 때문이다. 따뜻함과 화목함, 사랑이 가득한 곳은 늘 다른 사람의 집 안이다. 어머니는 여행을 떠났고, 아버지는 사막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자신보다 똑똑하고 잘 나가는 동생은 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가정도 가지고 있다. 동생의 삶은 리가 훔쳐보고 있는 집안의 풍경과 비슷할 것이다. 리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행복한 가정 말이다.


그렇다면 동생 오스틴은 행복하기만 할까? 인간은 그리 쉽게 행복할 수 없는 족속들이다. 오스틴은 형의 자유가 마치 타인의 아늑한 가정처럼 느껴진다. 부러움의 대상이다. 가져본 적이 없으니 손에 넣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오스틴에게는 잘못하면 잃게 되는 것이 너무 많다. 작가의 명성, 돈, 질서 있는 가정 등 무엇하나 쉽게 얻은 것이 아니다. 당연히 잃었을 때의 두려움이 크다. 오스틴은 최선을 다해 그것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들이 한순간에 망가진다면, 손안에 잡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오스틴은 지금과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서부극을 쓰기 시작한다. 진실한 서부의 이야기 '트루 웨스트'는 두 사람의 손을 통해 태어난다.

서부극이란 뭘까. 미국인들에게 서부극이란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본 고려나 조선의 이야기가 아닐까? 이미 지나가버린 시절의 이야기이고, 사건이다. 진실함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시간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혹은 다른 모두는 그곳에 어떤 종류의 진실함과 사실성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그곳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기보다 지금은 없으니 혹시 그때는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는 막 저물고 등에 차가운 밤공기를 느끼면서 말이야. 그런데 두 친구는 다 서로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어. 각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자기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둠 속으로 말을 달리는 거야. 뒤를 쫓는 친구는 앞선 친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 그리고 쫓기는 자도 자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거야.


리의 대사처럼 둘은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나도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극에 출연하는 배우는 셋이다. 영화 제작자인 '사울 키머'와 어머니를 한 배우가 연기하며 잠시 등장하고 사라진다. 즉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는 오롯이 리와 오스틴이다. 두 사람은 1시간 50분의 시간 동안 부딪히고, 타협하고, 싸운다. 두 사람의 긴장을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이 연극의 포인트일 것이다. 그 송곳 같은 날카로움이 객석에 전해지기만 한다면 성공이다.


극장은 작고 아담하다. 무대는 관객석보다 낮고 관객석의 단차도 그렇게 많이 차이 나지 않는다. 덕분에 두 배우가 앉아서 대화를 할 때는 앞 관객의 뒤통수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건 좀 치명적이다. 어중간하게 앞에 앉느니 차라리 아예 뒤쪽에서 관람하는 것이 나을 것도 같다.



당신은 리와 오스틴 중 어느 인생에 감정 이입이 될지 모르겠다. 둘 중 누구라도 가능하다. 내 입장에서는 폭주하는 두 사람의 상태에 마음이 간다. 두려움 때문에 언제든 미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 나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어머니처럼 그 어느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가족이란 늘 그렇게 피곤한 존재들이다. 가족이란 "누군가 보지 않으면 몰래 버리고 싶은(이 말은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말이다)"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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