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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11. 2022

여신님이 보고 계셔

-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지금껏 이 뮤지컬을 보지 않은 이유의 9할은 성시경 가수 때문이다. 이 뮤지컬이 처음 선보인 2012년 즈음 ‘오 나의 여신님’이란 노래가 유행이었다. 자신의 여자 친구를 ‘여신’이라 부르며 ‘오 나의 여신님 어쩌고저쩌고’하는 내용의 노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감미로울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맨 정신으로 소화하기 퍽 힘든 내용이다(당시 노래를 부르신 성시경 가수님도 사랑에 빠진 상태였겠죠. 아니라면……과연, 이 노래를 어떻게… 츄릅 ㅠ.ㅠ ). 아무 곳에서나 불쑥불쑥 들리던 노래만으로 충분히 닭살이 솟아오르는데, 비슷한 때 선보인 뮤지컬의 제목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라니, 어떤 내용인지 알아볼 생각도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뭐 자신의 여자 친구가 여신이고, 늘 지켜보고 있다는  그런 내용인가 보다 했다. 요즘은 여신이 유행이야?...... 뭐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022년인 지금, 10주년 기념의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고 그만큼 늙은 나는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뭐 젊은이들이 여자 친구를 여신이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이제쯤은 한번 봐줘도 좋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내가 다 틀렸다. 이 뮤지컬의 배경은 6.25다. 여신은 나오지만, 누군가의 여자 친구는 아니다. 이래서 편견이 무섭다. 뮤지컬 관계자 분들, 죄송합니다.




‘이야기’라는 문제에서 ‘우리 고유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더 크라운’이나 ‘엘리자베스’ 같은 영국 드라마나 1,2차 세계대전을 다룬 숱한 유럽의 영화, 하다못해(표현이 좀 격하기는 합니다만……) 인디언과 교감하는 미국 영화들을 보면서 ‘그렇다면 우리에겐 무엇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명성황후’ 같은 말도 안 되고 역사도 아닌 이상하고 기괴한 작품을 ‘우리의 고유한 것’이라고 불러야 하나 객석에 앉아 입맛을 다셔야 할 때 그 감정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 우리가 고작 이 정도밖에 못 만드는 민족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명성황후’ 같은 작품을 수출할 바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고 나는 생각했다. 조금 부끄러웠다.




오늘 이 뮤지컬을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 나에게 “우리 고유의 이야기”에 관해 묻는다면 손가락을 들어 이 작품을 가리켜줄 것이다. 슬프고, 아프고, 어떤 의미로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전쟁인 6.25가 이 작품의 배경이다.




무대에 불이 켜지면 남한군 대위 한영범이 보인다. 그는 인민군 간부 이창섭을 비롯한 포로들을 이송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느물 느물 임무를 피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한영범은 그런 사람이다. 어딘지 한심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게으름을 부리기도,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에는 능한 사람. 부하 신석구와 함께 이송선에 올라보니 뭐야, 처음 들었던 것보다 포로의 숫자도 많다. 아이, 참. 설상가상 멀미까지 생겼는데 기상은 점점 나빠진다.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는 배 위에서 포로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그다음 배가 뒤집힌다. 무인도에서 정신이 든 한영범에게 보이는 것은 이전에는 포로였던, 하지만 이미 무기를 빼앗은 인민군 군사 네 명이다. 망했다. 배는 고장 났고, 섬을 탈출할 방법은 배를 고치는 것뿐이다.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인민군 병사 ‘류순호’뿐인데 이 사람, 아무래도 살짝 맛이 갔다. 잠도 잘 못 자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며 소리를 질러댄다. 한영범은 가족을 떠올리며 딸에게 불러줬던 자장가를 흥얼거린다. 순호가 그 노래에 반응한다. 한영범은 순호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내친김에 섬에 사는 여신님이 지켜보고 있다고 ‘뻥’을 친다. 나쁜 뜻으로 한 것은 아니다. 세상은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그중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에…….




전쟁이란 ‘극한 상황’이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상할 수 없이 비정한 상황이다. 사실 전쟁을 겪지 않은 나는 그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6.25를 겪은 모친의 회고담, 비슷한 시기를 겪은 어르신들의 경험, 영화 같은 것을 통해 대리 경험을 할 뿐이다. 즉 전쟁의 비참함과 아픔을 아마 100분의 1도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에게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총구를 겨눈 상대에 대해 알게 되면, 과연 총을 쏠 수 있을까? 이 뮤지컬이 말하는 지점은 그곳이다. 각자의 살아온 배경, 역사, 각자의 여신님(이건 성시경 가수님의 노래 속 그 여신의 의미입니다)에 관해 알게 된다면, 즉 상대를 제대로 된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래도 총을 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순호와 여신님의 노래처럼 “전쟁도 싸움도 다 부질없는 짓이죠. 잊지 말아요. 그 너머의 사람들을 봐요.”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 뮤지컬의 중심은 배를 고쳐야 하는 류순호와 그의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영범이지만, 악역(?)인 이창섭이 없다면 배는 뜨기도 전에 기울고 말았을 것이다. 이창섭 역의 윤석원 배우는 매우 험악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거친 함경도 사나이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사실 솔로 파트가 거의 없어서 가창력보다는 연기력이 필요한 배역이었는데, 아주 까슬하게 제 역할을 다 해주었다. 한영범 역의 조성윤 배우는 다른 뮤지컬에서도 꽤 만났었는데, 저분이 저런 성격이었나 싶게 잘 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매력 있다. 나머지 배우들의 분량도 꽤 공평하게 배분되어 있는데,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제 역량을 보여주었다. 물론 신석구 배역의, 내가 애정 하는 송유택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다. 마이크 덕분에 노래뿐 아니라 저음의 대사도 아주 또렷하다.


‘여신’은 순호에게는 ‘희망’의 다른 말이다. 그에게는 어떤 구체적인 희망이 있었고, 그것이 표현된 것이 ‘여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최근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을 정도로 희망이 사라졌었다.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손 끝에 올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내가 꽤 나이를 먹은 탓에 젊은 희생자들에게 표현할 수 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미안하고 죄송하다.


그리고 오늘, 다시, 희망에 대해 말하는 작품을 만났다.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언젠가 나도 다시 희망에 대해 떠올릴 시간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이 뮤지컬 바람직하다. 극 중반을 넘어서면서 극장 가득 훌쩍이는 소리가 머물렀던 것을 보면 매우 감정을 자극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작품이다. 손수건 준비하시고 극장을 찾길 바란다. 한두 번 본 것이 아닌 듯한 내 옆 자리 관객도 계속 훌쩍이면서 커튼콜을 촬영하고 있었다. COVID 19 상황이 아니었다면 소리를 질렀겠지.


지금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려면 이 극장을 찾길 바란다. 그냥 '한 여름 밤의 꿈'처럼 행복해지고 싶은 분들께도 추천한다. 세상에 희망이 돌아오고 조금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강건한 염원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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