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평소의 영양 섭취나 체중으로 봤을 때 전혀 ‘몸보신’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더운 날씨에 뜨거운 것을 먹기 위한 핑계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지도 앱을 켜고 숙소 근처의 바쿠테 전문점을 찾았다. ‘동남아식 갈비탕’이라고 알려진 바쿠테는 중국 이민자들이 먹기 시작한 요리라고 한다.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한 것이니 이슬람 영향권인 말레이시아 토종 음식은 아닐 것이다. 대기를 각오하고 찾았지만 의외로 입장과 동시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새벽부터 문 여는 가게를 어중간한 시간에 방문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었던 것 같다.
주방 바로 앞에 앉은 덕분에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들을 구경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바쿠테를 주문하면 바쿠테만 나온다. 밥이나 야채 볶음과 같은 반찬류는 따로 주문해야 한다. 거대한 뼈와 족에서 살을 발라내는 요리사, 깊은 찜기 속으로 몸을 숙이고 밥을 푸는 직원, 준비된 음식을 큰 쟁반에 올려 옮기는 사람들로 테이블 옆 통로는 조용할 틈이 없었다.
도기로 된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바쿠테가 도착했다. 돼지갈비에 각종 향신료를 넣고 끓인 탓에 국물은 짙고 맑은 갈색을 띤다. 한약에도 사용되는 약재가 들어간 것이 아닐까 추측할 만큼 건강한 맛이 난다. 고기를 물에 넣고 끓이는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갈비탕과 비교하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바쿠테. 건강해지는 맛이다.
“몹시 건강해지는 맛이야.”
함께 주문한 공심채 볶음을 씹으며 내가 말했다. 식탁 위에는 마늘, 고추와 함께 소스통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음 가는 대로 국물에 넣고 휘젓자 약보다 음식에 가까워진 맛이 난다.
“별로야? 난 괜찮은데…… 말라카 도착할 때까지는 밥 먹기 어려우니까 그래도 좀 먹어.”
갈비살과 뼈를 분리하며 동행이 말했다. 작은 냄비 안에는 고기가 꽤 많이 들어 있다.
“별로라기보다는 약 먹는 느낌이야. 공연을 본다고 왔는데 강연을 듣는 느낌이랄까. 강연 내용이 나쁜 건 아닌데 내가 원하는 것과 조금 다른 그런 느낌?”
관광객들에게도 이름난 가게라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손님들이 앉은 테이블도 여럿 보인다.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말라카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식당을 나섰다.
푸른색으로 표시된 것이 말레이시아다. 외교부에서 퍼왔음.
말레이시아는 말레이반도와 보르네오 섬 북부를 영토로 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말레이 반도 아래쪽 ‘싱가포르’는 같은 나라가 아니며, 마찬가지로 보르네오 섬 위쪽에 있는 ‘브루나이’ 역시 다른 국가다. 어쩌다 이 빠진 동그라미 같은 형태의 나라가 탄생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좀 들여다봐야 한다.
말레이반도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남아 있는 기록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근처 중국이나 인도, 아랍, 페르시아의 문헌에 등장하는 토막 기록에 의존하게 되는데 당연히 그 내용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고고학적 물증으로 그 틈을 매울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덥고 습한 말레이 반도의 기후가 증거 보존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남은 자료를 끌어 모아 역사를 구성해 봤을 때 가장 먼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나라는 ‘랑까수까’다. 말레이 반도의 북쪽, 태국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벌써 ‘주석’의 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말레이반도 남쪽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1900년대 이후 밝혀진 고고학적 물증에 의해 서기 전부터 체계적인 정착지가 존재했다는 사실 정도만 유추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말레이 반도에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대신 많은 소규모의 왕국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국가들은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힌두- 불교문화가 이들 나라의 바탕을 이뤘다.
670년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반도 아래쪽을 아우르는 영토를 보유한 ‘스리비자야(Srivijaya)’가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 이슬람 제국이 만들어지며 인도양 및 남중국해까지 이슬람 상인들의 활동이 시작된다. 인도와 중국을 잇는 항로 가운데 위치했던 스리비자야는 해상 무역 국가로 성장해 간다.
13세기의 거의 마지막인 1293년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마자빠힛 왕국이 탄생한다. 서쪽으로는 수마트라, 동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까지 세력을 확장하던 마자빠힛은 마침내 스리비자야와 결전을 앞두게 된다.
1403년 스리비자야 왕국의 왕자인 ‘빠라메스바라’는 마자빠힛의 공격을 피해 말라카 해협을 건넌다. 지금의 말레이시아 말라카 지역에 자리 잡은 왕자는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강력한 해상 왕국인 ‘말라카’였다.
말라카 지도. 말레이시아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당시 해상 무역로가 표시되어 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렸다. 잠시 들른 휴게소에는 각종 음식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고 작은 편의점과 화장실이 있었다. 우리나라 휴게소와 비슷하다. 망고와 아이스크림으로 떨어진 당과 수분을 보충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라카 까지는 3시간 정도 걸렸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더우셨죠?”
말라카에 도착하기 전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다. 버스 안의 관광객들은 앞다투어 그렇다고 소리를 질렀다.
“쿠알라룸푸르의 더위가 그냥 커피라면 말라카는 TOP입니다. 더워요, 아주 더워요. 지도를 떠올려보면 아시겠지만 말라카가 적도와 더 가깝습니다. 덥고 습해요. 그러니 지금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에어컨을 쐬고 추워서 죽겠다 싶을 정도로 한기를 몸 안에 가두세요. 그래야 말라카 거리를 걸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