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의 먹거리

- 에그타르트와 첸돌

by 지안


.햇살이 뜨겁다 못해 따가운 말라카 거리를 터벅터벅 걸었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짧은 벽화 거리가 이어졌고 그 끝에 강이 있었다. 이 강으로 지금도 배가 지나다녔고 강변을 따라 호텔과 상점, 카페가 늘어서 있었다.


더위에 축 늘어진 나를 위해 코코넛 셰이크를 구입했다. 코코넛 워터 속에 얼음과 아이스크림을 넣어 간 것으로 중간중간 과육도 씹힌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맛있지만 칼로리 생각을 하면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직감이 드는 훌륭한 음료다.


셰이크를 다 마시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길 모퉁이에서 만난 달콤한 향기의 진원지를 홀린 듯 쫓아가 진열대 안에 놓인, 막 구워져 나온 에그 타르트를 샀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의 거리에 에그 타르트가 흔한 것처럼 한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말라카에도 에그 타르트를 파는 상점이 많았다.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는 징표 같은 것일까? 말라카에는 포르투갈 남성과 현지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도 있다. 시간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말라카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음식으로 첸돌(Cendol)이 있습니다. 말레이식 빙수라고 할 수 있어요. 얼음 위에 흑당으로 만든 소스를 넣고 판단 잎이라는 먹을 수 있는 풀로 만든 국수 모양의 젤리와 강낭콩을 넣은 빙수입니다. 즐겁게 관광하신 후 네덜란드 광장 앞에서 만나 뵐게요.”


차에서 내리기 전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다. 설명을 들어도 어떤 맛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삶은 강낭콩을 얹은 빙수라……. 판단 잎이라는 건 뭐야?

말레이식 빙수 첸돌. 붉은 강남콩과 푸른 판단잎 젤리의 조화랄까.... 맛은 좋다.

약속 시간을 가늠하며 강가 첸돌 가게에 들어섰다. 마음이 급했다. 주문을 하고 빙수를 받아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키 큰 60대 넘은 할아버지 점원이 뭐라고 말을 했다. 동행이 뭐라 말을 하고 내 손을 끌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가져다주신대.”


강을 마주 보고 나란히 놓여 있는 의자에 앉으며 동행이 말했다.


네가 말레이어를 알아 들었다고?”


“아니, 중국어. 나도 하지는 못하는데 조금은 알아듣거든.”


“왜 갑자기 중국어? 너 중국인으로 오해 받은 거야?”


“왜 이래, 일본인처럼 생겨 가지고. 아무 말이나 알아들었음 빨리 먹고 떠나자고.”


할아버지 점원이 산처럼 쌓인 첸돌을 우리 앞에 놓아주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중국어인 “씨에 시에”가 시전 되는 것을 들으며 숟가락을 잡았다.


벽화가 그려진 말라카 거리


말라카에 포르투갈의 후예들만 사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혹은 그들의 후손도 살고 있다. 지금만 그런 것도 아니다. 포르투갈이 말라카에 도착하기 전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말라카의 최전성기 당시 인구는 1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베니스에 견줄 수 있는 도시였다는 주장도 있다.


전 세계 항해자들이 말라카로 모여들었고 말레이어가 국제어로 통용되는 가운데 84개국의 언어가 거리를 채웠다. 왕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평등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민이 장려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역업에 종사했다.


말라카 사람들이 향신료를 직접 재배하 것은 아니다. 대신 동남아 각국에서 재배한 향신료가 말라카로 모여들게 만들었다. 말라카 왕은 강력해진 군사력으로 주변 나라를 위협해 향신료를 말라카로 가져왔고, 외국 무역상들이 생산자와 직거래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즈음 말레이시아로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 현지 여인들과 결혼해 정착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후손을 ‘프라나칸(혹은 페라나칸 Pelanakan)’, 혹은 ‘바바뇨냐(남자를 가리키는 ‘바바’와 여자를 가리키는 ‘뇨냐’의 합성어)’라고 부른다. 이들의 문화는 배타적이지 않다. 서로 부드럽게 융화되고 혹은 개별적으로 존재했다. 내가 방금 지나온 청 훈 텅 사원과 깜풍 클링 모스크, 스리 포이타야 비나야가르무르티 사원이 그 증거일 것이다. 말라카의 언덕 위에는 가톨릭 교회도 존재한다. 이 모든 종교가 공존한 곳이 말라카다.

말라카 거리. 2층 집들이 많다.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확보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난민에 관한 이야기도 뜨겁다.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한 대처를 보고 있자면 ‘잘 배우고 능력 있는 외국인의 입국은 환영하지만 그렇지 못한 외국인은 안 됩니다.’ 라는 거친 마음이 읽힌다. 투자나 기술 이민은 적극 장려되지만 난민이나 일반 이민을 입국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허들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해수면은 높아져간다.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땅이 속출하고 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단순히 ‘기후 위기’지만 곧 있으면 기후 위기 때문에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이 이주를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 ‘전지구적 현상’ 내지는 ‘전 육지적 현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외국인과 함께 사는 일’에 관해 진지한 마음으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내가 사는 동네에 이슬람 사원이 지어진다는 이유로 돼지고기 파티를 벌이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큰 파도가 넘실대는 확실한 느낌이 든다. 더 늦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난 강낭콩 싫은데 이렇게 해 놓은 건 먹을 만하네?”


“그러게. 흑당을 끼얹은 빙수라니 상상도 되지 않았는데 이거라면 두 그릇도 비울 수 있겠는걸?”


절반 정도 먹은 후 여분의 흑당을 부었다. 단 것은 진리다.


"이 초록색 젤리 식감이 독특해. 상상하지 못한 맛인데 맛있어."


우리 둘은 마시듯 첸돌을 털어 넣고 네덜란드 광장으로 향했다. 씨에 시에, 할아버지가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keyword
이전 12화말라카의 사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