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말라카

- 네덜란드 광장과 성바울 교회

by 지안

네덜란드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맞은편 노점상들이 쳐 놓은 그늘막 아래로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스파이더맨이나 피카추, 그 외 이름도 알 수 없는 앙증맞은 장식을 한 트라이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I LOVE MELAKA”라는 상징물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조신하게 줄을 서야 했다.


무역과 상업으로 번영을 누리던 말라카를 포르투갈이 점령한 것은 1511년이었다. 인도의 고아 지방을 이미 점령하고 있던 포르투갈의 군인 안폰소 데 앨버커크(Afonso de Albuquerque)가 병력을 이끌고 말라카를 공격한 것이다. 40일간의 전투 끝에 말라카는 함락된다. 술탄 일가는 조호르 지방으로 도망친다.


도시에 남은 말라카인들은 테라스에 진지를 구축하고 시가전을 벌였다. 포르투갈 군대는 모든 집을 수색해 말라카인들을 사살했다. 그리고 도시를 통째로 불태우기 시작한다. 말라카 이슬람의 중심이 됐던 대모스크도 파괴됐다. 말라카인들이 포르투갈에 대해 가졌을 분노가 느껴진다. 포르투갈은 말라카를 130년 동안 지배했다.


네덜란드 광장, 나는 말라카를 사랑합니다. ㅋ


말레이시아의 역사가인 파라하나 슈하이미는 [15세기 동남아 무역 왕국 말라카]라는 자신의 책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포르투갈인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도시 전체에 말레이인들에 대한 색출이 이루어졌다. 현지 여성들은 강제로 개종되었고 임신당했다. 왕궁의 여인들은 포르투갈 왕에게 보내어졌고 말레이인들은 플라우 자와로 보내져 거기서 집단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130년 후인 1641년. 5개월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네덜란드는 말라카를 손에 넣는다. 새롭게 말라카를 지배하게 된 네덜란드는 부서진 도시를 수습해 광장을 만들고 관청과 주거지역을 새롭게 조성했다. 1823년 영국은 전쟁이 아닌 조약을 통해 말라카의 주인이 된다. 덕분에 네덜란드와 관련된 건물이나 지명은 아직도 남아 있다.


성 바울 교회 입구

몇 없는 포르투갈과 관련된 유적을 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비스듬히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기 전 작은 비석 앞에 걸음을 멈췄다.


“이곳이 스리비자야 왕국의 왕자였던 빠라메스바라가 말라카 왕국을 세운 장소입니다. 비석 옆에 둥근 것이 우물터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빠라메스바라 왕자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지치고 좌절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함께 온 신하들과 술을 마셨답니다. 그런데 데리고 온 사냥개들이 사슴을 발견하고 쫓기 시작합니다. 사기도 떨어지고, 술도 좀 취해서 정신없던 왕자가 멍하게 그 광경을 지켜봤겠죠? 그런데 갑자기 사슴 여러 마리가 합류합니다. 오히려 많은 사슴들이 개를 몰아서 저 우물에 빠뜨려 죽여 버렸답니다. 그걸 보고 왕자가 깨달음을 얻습니다. 저렇게 약한 사슴도 뭉치면 사냥개를 잡을 수 있는데, 우리도 힘을 모아 나라를 세워보자, 이렇게 된 것이죠. 그렇게 건국된 것이 말라카입니다. 정말 여기서 왕자가 술을 마셨을까요? 뭐 누군가 어느 동굴 앞에서 여기가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곳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겠죠?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빠라메스바라 왕자가 술을 마셨다는 그 장소. 술잔을 버리고 사냥개를 살리라!!


“아니, 기르는 개가 우물에 빠질 정도가 되면 술잔을 던지고 개를 구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술꾼인 나도 그 정도 상황 파악은 한다고. 아무래도 왕도 사슴이 무서워서 쫄았던 것 아닐까?”


내가 동행에게 소곤거렸다.


너, 왕자 해 봤어?”

동행이 문득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없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지. 자기들 빼곤 다 많은 것 중 하나 아냐?어디 키우는 개가 그거 한마리였겠어? 자기 나라 백성도 때리고 죽이고 마음대로 했을텐데. 아니지, 백성들은 사냥개보다 못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왜 유명한 말 있잖아. 서 있는 곳이 바뀌면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고."


동행이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얕은 언덕 위로 낮은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산비탈의 형상에 맞게 계단을 놓은 탓에 길은 좁아지기도 하고 휘어지기도 했다. 십 분쯤 걸었을까, 손목이 잘린 신부님 동상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분은 누구신가, 생각하며 동상을 지나치자 왼편으로 탁 트인 전망이 나타났다.


“여기가 1521년 만들어진 성 바울 교회입니다. 전망이 훌륭하니까 일단 한번 둘러보세요.”


가이드에 말처럼 풍경에 압도되어 천천히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말라카의 전통 칼 타밍 사리를 본떠 만들었다는 ‘타밍 사리 전망대’가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도, 말라카 왕국의 보물을 훔쳐 달아나던 포르투갈 범선을 복원해 세워 둔 해양 박물관의 모습도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성바울 교회에서 바라본 바다.

“이곳은 특히 뱃사람들에게 신통력을 발휘한 교회라고 알려져 있죠. 어느 날 심한 폭풍이 칩니다. 배가 난파하고 선원들이 위험해졌죠. 누군가 이 교회로 찾아와 울부짖자 신부님이 튀어나와 바다를 보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전개 상 물론 바다가 바로 잠잠해졌겠죠? 그 신부님 이름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T Francisco Xavier)입니다.”


아쉽게 바다를 등지고 돌아서자 낡고 허름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가 동상 앞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이것이 하비에르 신부의 동상입니다. 어느 날 하비에르 신부는 중국으로 포교 여행을 갑니다. 그런데 중국이 상륙도 하지 못하게 했어요. 그렇게 해상에서 떠돌다 병으로 죽습니다. 자, 이제 신부님 시체는 돌아 와 말라카에 묻힙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은 자신이 죽으면 인도의 고야에 묻어 달라고 하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고야 쪽으로 바람이 부는 때에 신부님 시체를 꺼냅니다. 그런데 시체가 전혀 썩지 않았다는 말이죠. 이건 분명히 하늘의 뜻이다, 이 현상은 성인의 표시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로마에 이 사실을 통보합니다. 로마는 ‘못 믿겠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죠. 그렇겠죠? 그러면서 ‘그럼 시체를 로마로 보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시체를 전부 로마까지 보내기는 번거로운데 손목 하나만 잘라 보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신부님 손목을 잘라서 로마로 보냈고 성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부복을 입은 손목 절단된 남자는 하비에르 신부를 가리키는 아이콘이 되었다. 우리는 끄덕이며 곧 무너질 것 같은 교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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