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말라카 그리고 영국

국립 박물관

by 지안

성바울 교회는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정도였다. 두꺼운 벽 곳곳에는 상처가 있었고 창문은 흔적조차 없었다. 지붕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 같다. 내부에는 텅 빈 공간 속 두꺼운 석판들이 줄지어 놓여 있을 뿐 재단도, 계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교회는 유적지라기보다는 폐허처럼 보였다. 종교 시설이 이처럼 철저하게 파괴된 이유는 뭐였을까?


“이 건물은 네덜란드 점령 직후에는 교회로 이용되다 아까 네덜란드 광장에서 보셨던 성당이 지어지면서 버려집니다. 이후 말라카 방어를 강화하면서 요새의 일부로 편입되죠. 영국군은 버려진 교회인 이곳을 화약고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저기 바닥에 놓인 돌들은 이 교회에 매장할 때 사용한 비석 같은 거라고 해요. 최근 이곳을 발굴하면서 찾아낸 것들입니다.”


뻥 뚫린 지붕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교회 내부에 서서 가이드가 이렇게 설명했다. 아테네 신전도 전쟁으로 인해 망가졌고, 말라카 교회도 전쟁 때문에 폐허가 됐다. 인간이 신에게 부여한 신성이란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딱 그만큼 지켜지고 유지된다. 전쟁은 신에게도 인간에게도 불행이다.


산티아고 성문


교회 뒷문을 빠져나오자 길은 아래로 이어졌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자 산티아고 성문(Porta de Santiago/ A Famosa)이 나왔다. 지금은 성문 하나만 달랑 남아 있지만 과거에는 교회부터 이어지는 성벽이 굳건히 서 있었을 것이다.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점령하고 난 후 이곳에 요새를 지었습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한 땀 한 땀 벽돌을 쌓았을 리가 없죠. 말라카에 살던 사람들이 노예로 부려집니다. 이후 네덜란드가 이곳을 차지했을 때 성벽은 더 강화가 됩니다. 모두 4개의 성문이 있는 거대한 성벽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이 더위에 이런 돌들을 쌓자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십니까? 영국이 점령한 후 성벽은 파괴됩니다. 성문 앞에 가시면 두 개의 대포가 있어요. 하나는 네덜란드, 다른 것은 영국이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어떤 대포가 어느 나라 것인지 한번 맞춰 보실까요?”


정수리가 타들어 가는 것을 느끼며 남겨진 유적이 내미는 작은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주위를 둘러봤다. 말라카의 주민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조용하던 항구 마을이 어느 순간 무역의 중심이 되어 번영하다, 그 때문에 타국의 침입을 계속해서 견뎌야 했을 사람들. 누군가는 그 변화에 올라타 재산을 모으고 기회를 잡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고통받고 힘겨워했을 것이다. 숫자로 보자면 후자가 훨씬 많았겠지.


해양 박물관

조금 답답한 마음으로 길을 걷다 보니 거대한 범선의 모습이 보였다. 해양 박물관(Maritime Museum)이다. 말라카 왕국의 보물을 훔쳐가다 근해에 수장되었던 포르투갈 배를 복원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픈 역사의 한 부분에 내리는 꽤 근사한 복수의 방법인 것 같다.




일정의 마지막은 말라카 강 크루즈였다. 말라카 강 위를 움직이는 배는 관광 용도뿐 아니라 교통수단으로도 사용 중이다. 중간에 멈췄다고 몸을 움직였다간 일행과 떨어지는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강 주변으로 다양한 모양의 상가들이 늘어서 있다. 강변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강을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말라카는 당일로 방문하기 아까운 도시다. 며칠쯤 여유를 두고 강변을 따라 걷거나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이곳을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고 떠난 나는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다음 날 아침 국립 박물관(Muzisum Negara)을 찾았다. 특색 없는 석기 전시품이 자리한 선사 시대관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말라카 시대의 유물이 전시된 방으로 이어진다. 말레이 인들이 말라카 왕국에 대해 품은 자부심이 느껴진다. 화려하고 근사한 말라카 왕국 전시관을 빠져나오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전시관으로 이어진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마지막은 근대 말레이시아의 형성한 자료들이 놓여 있다.

15세기 말라카를 나타내는 지도.

15세기 말레이시아 반도의 주인공은 의심의 여지없이 ‘말라카 왕국’이었다. 왕국의 번영은 1511년 포르투갈에게 점령당할 때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인들은 패배에 대한 원인을 말라카의 국력이나 포르투갈의 군사력 외 다른 곳에서도 찾는 느낌이 든다. 앞서 인용했던 파라하나 슈하이미의 책 <15세기 동남아 무역왕국 말라카>는 패배에 대해 이런 주장을 펼친다.


포르투갈이 공격하였을 때 중국 무역 상인들은 말라카를 방어하지 않았다……

중국과 말라카는 정화 제독이 국빈 방문을 한 이래로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무역상인들은 도시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위험을 감지하자마자, 중국 무역상들은 포르투갈인들에게 만약 그들이 도시를 점령하면 귀중품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으로 그들을 안심시키면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배신하는 중국인이 없었더라면 포르투갈인들은 지원병을 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중국 무역선들은 포르투갈인들을 판타이 히리르와 우종 파시르에 몰래 실어다 날랐다.


이 의견의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은 역사를 전공한 분들의 몫일 듯하다. 고작 책 몇 권을 훑어 본 독자의 입장으로 내릴 판단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견해가 말레이인들이 중국인들에게 품고 있는 정서 중 하나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근대 말레이시아 형성 과정에서 터져 나온 불협화음의 깊숙한 곳에 이런 정서가 깔려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말라카 유물

말라카가 포르투갈에 점령당한 뒤 왕국의 면면은 조호르 왕국으로 이어진다. 18세기까지 이어지던 조호르 왕국의 번영은 왕위 계승 문제가 복잡해지며 삐걱대기 시작한다. 네덜란드나 영국과 같은 제국들이 군침을 흘릴 시기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조호르 왕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1824년 영국과 네덜란드가 맺은 조약의 결과로 조호르와 싱가포르는 영국의, 리아우-링가 군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된다. 당시 영국이 차지한 영토가 지금의 말레이시아, 네덜란드가 점령한 곳이 지금의 인도네시아라고 보면 무방할 것 같다. 즉 이 시기 이후 영국은 말레이시아를 식민 통치하기 시작한다.


영국 식민 통치에 대한 말레이시아 인들의 감정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이 시기에 대한 말레이시아인들의 감정은 어떨까? 전시관 한쪽에 이런 의문을 풀어줄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한 장만 대충 훑어보자면 이런 내용이다. “말레이 주 행정에 대한 영국의 참여로 행정 자체뿐 아니라 교통, 통신, 교육 등 모든 분야가 진보를 누렸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의 후손으로 이런 설명은 꽤 놀랍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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