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2월, 영국은 식민 지배하에서 말레이인 사회가 누렸던 전통적인 특권을 유지하면서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보장한다는 ‘말라야 연방 체제’ 도입을 선언한다. 이에 반발해 중국인들이 중심이 된 말라야 공산당이 무장봉기를 일으킨다. 영국은 봉기를 진압함과 동시에 반영 정치 단체를 불법화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던 중국계나 인도계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말레이시아 지도 - 사라왁(Sarawak)과 북보르네오(Sabah). 위키피디아 펌
1961년 말레이시아의 초대 수상은 그때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 브루나이, 사라왁, 북보르네오를 포함하는 말레이시아 연방 구상을 제안한다. 경제적 이점을 취하기 위해 중국인의 비중이 많은 싱가포르를 연방의 일원으로 받는 대신 말레이인의 비율이 많은 나머지 국가를 연방에 편입시켜 연방 내 말레이 인의 인구 비율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이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반발로 한때 말레이시아 연방의 출범 자체가 불투명해지도 했다. 제안에 응답해 연방에 가입했던(1961년) 브루나이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에 관한 이해 때문에 1년 후(1962년) 탈퇴한다. 중국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싱가포르는 1965년 연방에서 축출된다(축출을 원했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이로써 조금씩 조각이 빠진 것 같은 말레이시아의 영토가 완성된다.
현재 말레이시아 지도- 브루나이와 싱가포르는 제외된 이빠진 모양이다. 외교부 펌
박물관의 마지막 전시관에는 사진들이 많았다. 역대 총리들의 거대한 사진이나 유명인들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엇으로도 현재 말레이시아가 품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문제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거니까. 지금 말레이시아 역사의 승자들은 말레이인이야. 아이고, 저 모자 좀 봐. 귀엽기도 하지.”
박물관을 보고 나니 조금 서글퍼졌다. 하지만 아직 여정이 남아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관련 박물관이라는 [이슬람 예술 박물관(Muzium seni islam Malaysia)]으로 향했다.
이슬람박물관 내 번쩍이는 소장품들.
푸른 타일로 장식된 입구를 지나자 천장이 높은 복도로 이어졌다. 검은 부르카와 히잡을 쓴 여성이 티켓을 교환해 주고 손짓으로 방향을 알려 주었다.
검소한 복장의 직원과 달리 박물관은 화려했다. 3개 층으로 구성된 박물관 안에는 오래된 이슬람 관련 그림부터 직물, 코란, 무기류, 보석 등 다양한 종류의 전시품이 갖춰져 있었다. 방금 지나 온 국립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이 박물관 전시품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과연 세계를 지배했던 문화답다.
전시장 한 편에 포토 스폿도 만들어 두었다. 세심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번쩍이는 것은 이 정도면 됐어. 나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면 안 될까?”
내 마음을 알아챈 듯 동행이 중얼거렸다. 화려한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들이 놓여 있는 전시실을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3층을 건너뛸 것인가 고민하다 다시 오지 못할 장소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럼 자세히 보지 말고 뛰듯이 걷는 거야.”
흠..... 이것이 다 같은 말이라고?
이렇게 다짐했지만 결국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벽 한쪽에 붙어 있는 이슬람 캘리그래피와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천정의 돔에 마음을 빼앗긴 탓이다. 그냥 지나쳤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못 보고 갈 뻔했어,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물관을 빠져 나오기 전, 이 박물관의 소장품을 빠짐없이 만났다면 이제 마지막 선물을 주겠다는 듯 축소된 모스크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메카와 예루살렘, 테헤란과 다마스쿠스, 알람브라의 모스크가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만 봐도 본전은 뺀 것 같다.”
우리는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박물관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방문할 곳은 ‘브릭필즈(BrickFields)’였다. KL센트럴 근처에 자리 잡은 브릭필즈는 말레이시아로 이민 온 인도계 이민자들이 처음 정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후반 쿠알라룸푸르에서 발생한 대 화재 이후 영국 정부는 목재 대신 벽돌을 이용해 건물을 지으라는 법령을 만든다. 그 벽돌을 만들기 시작한 곳이 ‘브릭필즈’다. 즉 이곳은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인도 및 스리랑카 이민자들의 피와 땀이 시작된 곳이다.
브릭필드의 거리
택시에서 내리자 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분수와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색의 사리를 입은 여성들이 가게를 기웃거리며 쇼핑에 빠져 있었다. 카레 냄새 같기도 하고 향신료 내음 같기도 한 것이 길을 채우고 있었다. 인도 상품을 파는 잡화점과 음식점, 어쩐지 발리우드 영화를 상영할 것만 같은 극장도 보였다.
문득 툭 툭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열대의 날씨란 종잡을 수가 없네.”
우리는 쏟아붓기 시작한 소나기를 피해 근처 음식점의 지붕 아래로 뛰어 들어갔다. 여러 가지 모양의 사모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안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산도 무용지물일 정도의 세찬 비다. 으깬 병아리 콩을 넣은 사모사를 사서 선 채로 우물거렸다. 이렇게 우리는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와 중국, 인도의 향기를 모두 맡을 수 있었다.
비오는 날 튀김 냄새를 거부할 자 그 누구냐!
호텔에 맡겨 놨던 짐을 챙겨 우버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서는 장국영의 음색과 비슷한 중국어 노래가 흐르고 있었고 중국계로 보이는 운전사는차에서 내려 말없이 짐을 트렁크에 실어 주었다.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 비가 계속 오락가락했다. 운전사는 답답한 듯 이따금 마스크를 벗고 커다란 생수병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 선 후에도 차는 도무지 달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지난 것도 같은데 고속도로 위에는 많은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마스크를 내린 운전사가 고개를 돌리고 뭔가를 물었다. 저녁 7시 반을 향해가는 시간이었다. 뭐라고?
“몇 시 비행기냐고?”
“10시 30분. 늦을 것 같아?”
“막히지만 10시 30분이라면 문제없어.”
마스크를 다시 올리며 그가 대답했다. 안심한 듯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은 웃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여긴 항상 막혀? 처음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어서 그런지 이렇게 막히지 않았어.”
운전사가 손가락으로 앞 유리를 가리켰다.
“길은 똑같은데 사람과 차가 많아졌어. 게다가 톨게이트만 늘어나. 저것 봐. 저 톨게이트는 생긴 지 몇달 안됐어. 지나가면 어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길 위에 만들어 놓고 돈을 받아. 돈을 내야 하니까 또 막혀.”
“왜 톨게이트가 자꾸 생겨? 그건 안 되는 일 아냐?”
“그렇지. 하지만 누군가는 돈을 챙기겠지.”
꽉 막혀 있던 차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뭔가를 던지듯 손을 까딱거리던 운전사는 고개를 돌리고 운전에 집중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곧 떠날 외국인과 나누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공항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였다.
“좋은 여행이었길 바라.”
운전사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로써 3박 4일의 쿠알라룸푸르 여행이 끝났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본 것은 그야말로 ‘슬쩍’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라는 곳에 관한 흥미와 관심이 생긴 여행이기도 하다. 어차피 세계는 하루면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만큼 좁아졌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느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점이 아닐까.
< 참고문헌>
동남아사아사: 민족주의 시대, 최병욱, 산인, 2016
동남아시아 도시들의 진화 : 인간과 문화를 품은 바닷길 열두개의 거점들, 한광야, 성균관 대학교 출판부,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