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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언어의 끝 06화

6. 라인하르트

소설 <언어의 끝>

by 지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지현이 경혁에게 물었다. 알 수 없다는 듯 경혁이 어깨를 으쓱한 후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경혁이 가방 안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며 물었다.


“좀 알아봤어요?”


지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정도로는 알게 됐어요. 어제 종일 도서관에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썼다는 그 기사는 봤어요. 도표까지 아주 깔끔하게 만들었더군요. 대충 1970년대 1980년대 한국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주 조금 공부를 했어요. 사실 엄두가 좀 안 나네요.”


경혁이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누군지 알겠어요?”


포승에 묶인 표정 없는 남자들의 사진이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가장 오른쪽에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제일 오른쪽에 계신 분이 아버님이세요. 윤도현 씨.”


지현이 사진을 집어 들어 가까이 가져갔다.


“윤도현 씨는 1953년생인데 79년에 석사를 받았습니다. <담론의 폭격: 권력과 언어의 구조적 공모에 관하여>라는 것이 논문 제목이었어요. 언어학을 전공하셨는데 푸코의 이론을 끌어와 권력과 언어의 구조에 대해서 연구한 겁니다.”


경혁이 봉투 안에서 복사되어 묶인 서류를 꺼내 지현 앞에 놓았다.


“이게 복사본입니다. 원하신다면 읽어 보셔도 돼요. 저도 어제 현대사 전공하신 교수님 방에서 어렵사리 졸라서 가져온 것이긴 한데, 뭐 윤도현 씨 가족이 가져가셨다면 이해하시겠지요. 아무튼 제목에 비해서 내용은 과격하지 않아요. 지금 눈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에요.”


지현이 서류를 집어 드는 사이 경혁이 사진 몇 장을 펼쳐 놓았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기타를 치고 있는 남성과 웃고 있는 여성, 잔디밭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책상 앞에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남자 등이 나와 있었다. 지현의 눈에도 책상 앞에 앉은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 수 있었다.


“1980년 초에 윤도현 씨는 전라남도 국립대의 국문과 전임 강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이 사진들이 그때 찍은 것들입니다. 검찰 압수 목록에 있던 것들이죠. 2000년 초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찾은 겁니다. 저의 교수님이 거기서 일을 하셨거든요.”


“잠깐만요, 아버지가 강사로 일을 시작한 것으로 무슨 사건이 된다는 거죠?”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있었어요. 그전에도 대학 가는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고 학생들은 시위 때문에 정신이 없었죠.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어요. 윤도현 교수는 당시 바깥의 상황과 별개로 그냥 수업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는 대학 내로 공권력이 진입해 학생들을 끌고 가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윤교수는 수업을 하고, 그 수업시간에 누가 들어와도 내버려 뒀다고 해요. 수강신청을 한 사람이건 안 한 사람이건 내 학생이라는 거죠. 밖에서 도망치다 강의실로 들어오면 일단 되는 거예요. 물론 실랑이가 있었지만 윤교수가 강하게 나갔나 봐요. 학내를 다 헤집고 다니는 전경, 경찰도 윤교수가 수업하고 있는 강의실만은 건드릴 수 없었죠.”


“그런데요?”


“3, 4월 내내 그런 분위기였는데 5월이 된 겁니다. 이제 경찰이 아니라 군인이 들이닥쳤죠. 광주는 그야말로 하…… 뭐라 말하기 그렇네요. 아무튼 광주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윤도현 교수도 체포됐어요.”


“이유는요?”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까 빨리 손을 본 것이겠죠. 하지만 그땐 윤세원이 빨랐어요. 윤세원 씨가 아들을 빼 내옵니다. 윤도현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있으려고 했던 모양인데 그게 안 됐어요. 여기까지가 윤도현 씨에 관해 알 수 있는 공식자료 전부예요. 윤도현 씨와 정해원 씨는 1978년 결혼했죠? 아, 모르시나요?”


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은 1978년에 결혼하셨어요. 아마 정해원 씨가 스무 살이던가 그럴 거예요.”


어머니의 나이를 가늠해 보고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원 씨는 결혼하면서 학업을 그만뒀어요. 당시는 흔한 일이었죠. 그때쯤엔 윤세원 씨의 힘도 꽤 빠져 있긴 했어요. 독재자에서 다른 독재자로 권력이 넘어가던 시기였거든요. 장관직을 내려놓고 한유문화진흥재단 이사로 자리를 옮겼어요. 한국과 유럽의 문화를 진흥하고 어쩌고 하는 관변단체였는데, 웬만한 주재대사보다는 힘이 있었을 겁니다. 윤세원 씨가 1980년 말에 아들 내외를 독일 뷔르츠부르크로 보낸 데에는 아마 그런 이유도 있었겠죠. 자신은 미국통이라 미국이 편했을 수 있지만 위치가 그렇다 보니 유럽으로 보내는 것이 좀 컨트롤하기가 나았을 거예요. 윤교수는 거기서 1981년부터 비트겐슈타인을 주제로 한 철학 박사과정을 준비했고, 정해원 씨는 독일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1985년이 됐어요.”


“라인하르트 사건이 터진 건가요?”


경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이미 군에게 찍힌 사람이었는데, 군부 출신 독재자가 정권을 잡자마자 한꺼번에 간첩으로 몰렸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대충 그럴 거라고 짐작합니다. 라인하르트 사건에 관련된 유학생 대부분이 윤교수가 강의를 했던 전남의 국립대 학생들이었거든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정원으로 향하는 문에 조금씩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밖의 찬공기도 어둠과 함께 방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렇게까지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현이 고개를 숙였다. 경혁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사진들을 집어 봉투에 넣었다.


“저도 개인적으로 궁금하던 사건이었습니다. 아직도 궁금증이 다 풀린 건 아니지만. 자료는 교수님께 반납해야 하니 다시 가져갈게요. 아버님의 논문은 가지셔도 됩니다.”


“읽고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재봉 선생님의 자료를 반환받을 방법에 관해서는 제가 좀 더 알아볼게요. 그런데 그 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다른 이유가 있나요? 사실 그 자료 내용에 관해서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잖아요?”


“음. 그게 말이죠.”


경혁은 잠시 고민하는듯하더니 이내 말을 시작했다.


“저의 할아버지는 해방 후 건설업을 하셨어요. 꽤 성공적이었죠. 아버지가 그걸 물려받으셨어요. 그러니까 저희 집안은 언어니 철학이나 하는 것과는 정반대 편에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의 집합체라고나 해야 할까요. 대학 졸업반 때 우연히 할아버지 집에서 ‘Korea Papers’라는 책을 발견했어요. 어떤 젊은 한국인이 독일 사람들과 찍은 흑백 사진들도 몇 장 있었죠. 할아버지께 여쭤봤더니 자신의 부친, 그러니까 제 증조할아버지라고 알려주시더라고요. 증조할아버지가 그 옛날 외국인들과 사진을 찍었다, 신기하잖아요? 그때 이름을 기억해 두었죠."


경혁은 멋쩍다는 듯 지현을 보고 웃은 후 말을 이었다.


“그러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오재봉이라는 인물을 만났어요. 증조할아버지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전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그 아들이 제 할아버지셨던 거죠.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었어요. 해방 전에 한번 집에 들른 적이 있었고, 그때 기억만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책과 사진도 그때 받으신 거고. 그땐 영문을 몰랐겠죠. 뭐 하는 사람인 건지, 왜 이런 식으로 사는지. 오재봉은 독일에서 활동하면서 유럽 내 임시정부의 자금 전달책 활동을 했어요. 그러면서 책자도 만든 거죠. 나치가 등장한 이후 활동에 제약을 받았어요. 독일의 활동가 헬레네 크라우제(Hélène Krause)라는 분이 남긴 인터뷰를 보면 그런 얘기들이 나와요. 아무튼 오재봉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즈음 실종됐어요. 편안한 죽음이었길 바랄 뿐이에요.”


손끝이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추위가 몰려들었다.


“지현 씨, 전 언어의 힘을 믿고 그것을 위해 30년 동안 살아간 사람을 말하고 있어요. 그는 아마 조국의 해방을 보지는 못했겠지만 끝까지 그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전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겁니다. 전 가능하면 지현 씨가 그 논문과 잡지를 번역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저는 오재봉 씨와의 혈연관계를 입증할 서류를 준비하고 있어요. 베를린 대학에 제출할 용도로요.”


지현은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바닥이 닿지 않는 물아래로 계속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남은 힘을 짜내 입을 열었다.


“전 언어의 힘을 믿지 않아요. 지금 언어란 상품의 모델 역할 정도만 하고 있어요. 어떤 단어가 가장 잘 웃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죠. 누구도 문장의 아름다움, 행간의 수려함, 내재된 의미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아요. 관용은 부자들 것이라는 말이 됐고, 선거는 광고가 됐고, 인권이나 평등은 세상물정 모르는 고루한 말이 됐어요. 엄마라면 언어를 믿었겠지만 난 아니에요. 이제 언어는 힘이 없어요. 말은 그냥 말일뿐이에요. 이런 제가 그런 자료를 번역할 수는 없어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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