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남자와 여자의 남자

-오늘의 질문

by 지안

2000년대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시리즈가 유행했었다. 만나고(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 여자) 사랑하고(화성남자 금성 여자의 사랑의 365), 결혼하면서(화성남자 금성 여자의 결혼 지키기) 느끼는 남녀의 차이에 관해 쓴 글이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다른 종(?)으로 규정하고 어떻게 다른 지를 나열하고 있는데, 남성의 특성이라고 적어 놓은 대부분이 거의 내 성격과 비슷했다. 능률, 업적을 중시하고 대화 시 감정적 위안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등의 ‘남성’ 분류를 보며 사실 내가 ‘화성에서 온 여자’였던 것인지 잠깐 고민했던 적도 있다.


덕분에 흥미가 떨어져 한 권만 읽고 말기는 했는데, 어제 철 지난 영화 제목을 훑어보다 문득 남녀 사이에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남자가 떠올리는 '멋진 남자'와 여자가 열광하는 '끝내주는 남자'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란 어떤 것일까? 일일이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남성 작가나 감독이 만든 주인공에서 실마리를 찾도록 하겠다.


근간 만들어진 멋진 주인공이라면 단연코 ‘셜록’이다. BBC 미니시리즈 ‘닥터 후’를 집필하기도 했던 스티브 모팻이 만들고, ‘잘생김과 멋짐’도 '연기'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셜록으로 나온다

.

시리즈 1에서 경찰로 나온 여배우와 셜록이 나누는 대화에 그의 캐릭터가 잘 설명된다. 셜록을 사이코패스라고 말하자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야, 소시오패스지.’라고 말하는 부분 말이다. 셜록은 돈에 집착하지 않고(막상 경찰 일을 도와주면서 대가는 받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광분하며(연쇄살인을 펄쩍펄쩍 뛰며 좋아한다), 몸싸움에 주저하지 않으며(원작 속 셜록은 선수 급의 권투 실력을 자랑한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것에 으쓱한다(몰리에게 잘난척하는 것 좀 보라지). 여자에는 별 관심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연애는 언제나 가능하다 (빌딩에 잠입하기 위해 여비서를 꼬시는데, 무려 ‘프러포즈’하는 단계까지 간다).


말하자면 능력 있고,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그를 매수할 수 없으며, 언제나 여자들과 지낼 수 있지만 고독한 인물이다.


셜록 홈즈에 버금가게 인기가 있던 20세기 남자를 꼽으라면 단연코 레이먼드 챈들러가 만들어 낸 ‘필립 말로’다. 술을 좋아하고(모닝커피에도 위스키를 타 마신다) 돈에 집착하지 않으며(탐정이니까 보수는 받지만 많이 준다고 아무 일이나 하지는 않는다), 벌이는 신통치 않지만 나름 스타일에 신경 쓰며(자기 자신을 가리켜 ‘옷 잘 입는 남자’라고 말한다.), 굳이 꼬시지 않아도 여자들이 그에게 오며(거의 모든 작품에 이런 에피소드가 하나쯤은….), 냉소적이기 이를 데가 없지만(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말에 “상관없습니다. 태도를 파는 건 아니니까”), 술 마시다 친해진 잘 모르는 친구를 위해 위험이 뻔히 보이는 일에 뛰어들 만큼 의리 있는 인물(‘기나긴 이별’의 도입부)이다.


남자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를 레이먼드 챈들러는 그의 다른 책 ‘심플 아트 오브 머더’ 중에서 살짝 밝힌다.


“그는 완전한 남자여야 하고, 평균적인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평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진부한 표현으로 그는 진정한 남자다. 그것은 몸에 배어 자연스럽고, 본능적이고 필연적이지만 남들 앞에서 스스로 떠벌리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는 최고의 남자여야 하며 다른 세상에서도 잘 통하는 남자다.”


그렇다. 남자들은 이런 남자를 ‘최고의’ 남자로 치는 것이다.


셜록의 집주인인 ‘허드슨 부인’께서 듣는다면 경악을 하실 말이다. 사실 이런 남자들이 현실의 여자들 곁에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남친 말고 아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잘 지낼’ 사람 정도일 뿐이다.



여자들이 보는 ‘멋진’ 남자란 어떤 사람일까.


낸시 마이어스가 만든 영화를 보면 대략적인 견적이 산출된다. 2003년에 만든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란 영화를 보면 두 남자가 등장한다.


잭 니콜슨이 연기한 해리는 능력 있고 자유로운 플레이보이고 철딱서니 없는 남자다. 그러나 개과천선(!) 한 후(개과천선이란 능력은 있지만 자유력과 플레이보이력은 떨어지고, 대신 배려력은 치솟은 상태를 일컫는다. 그리고 꼭 여주에 의해 거듭나야 한다) 해피엔딩에 이른다.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머서 박사 역시 능력 있고 말솜씨도 좋으며 매너도 훌륭한 데다가 무려 20살 연하다.(하지만 여주에게 데쉬할 때는 열정적이지!)


말했다시피 남자가 생각하는 쿨한 남자와 여자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 사이에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속한 두 세계만큼 차이가 있다. 평범한 문을 열고 나가면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완벽히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팔 차원 정도가 오그라들고 펼쳐지는.


이쯤 되면 '남자의 남자'와 '여자의 남자' 사에는 강이 흐른다기보다는 태평양 정도가 놓여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이 드넓은 해양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어 쉽사리 배를 띄울 수도 없다.


영화들을 곱씹으며 남자와 여자 사이에 놓인 이 해협이 언젠가 매워져 결국 만나게 될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하는 비관적인 상상을 해보았다.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어서 더 마음이 아프다.


오늘의 질문 : 당신의 이상형을 말해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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