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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아빠 박성태(1)

21화 : 불꽃 속에 태운 청춘

by 이지아

여름날 새벽. 어스름한 출근길.

삼복더위에도 사람들은 기나긴 작업복을 차려입었다.

회색 행렬이 조선소 정문을 향해 묵묵히 흘러갔다.


그 출근 행렬 속에 성태도 있었다.

양쪽 가슴팍에는 '대우조선해양 조립가공부 박성태'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그 작은 이름표 하나에, 성태는 자신의 청춘을 갈아 넣었다.


용접 마스크를 내리자 세상은 오직 흰빛과 쇳내뿐이었다.

절단기에서 불꽃이 비처럼 쏟아지고, 크레인이 금속을 들어 올릴 때마다 공기가 떨렸다.

거대한 철판과 철판이 이어질 때면, 작업자들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곤두섰다.

작업성공의 기쁨은 잠시였다.

곧 다음 공정이 작업자들을 재촉했다.

이곳에선 잘한 사람보다 오래 버틴 사람이 살아남았다.


점심시간, 식판의 국물은 늘 미지근했다.

옆자리의 동료가 농담을 던지면 성태는 어깨로만 웃었다.

전날 야간 잔업을 마친 눈은 항상 충혈이었다.

“야, 성태야. 오늘도 잔업이냐?”

“어. 이번 달엔 애들 겨울 잠바 사줘야지.”

말끝은 늘 현실에 걸려있었다.

거대한 선체가 조립장 위에서 천천히 형체를 드러낼 때,

남자들의 등에서는 땀이 식었다.

퇴근 사이렌이 울려야 비로소 각자의 이름을 기억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왔다.


누군가 안전핀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날.

철판은 기울었고, 사람을 덮쳤다.


어제까지 같은 조였던 사내의 안전모가

사물함에 남겨져 있던 날,

성태는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조회 시간에 관리자가 ‘유가족’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장갑 낀 손이 더 세게 움켜쥐어졌다.


두려움은 늘 등 뒤에 붙어 다녔다.

땀에 젖은 작업복 속으로 스며들어

집으로까지 따라왔다.


그래서였다.

퇴근 후의 술 한 잔이

‘휴식’이 아니라 ‘대책’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임금은 좋았다.

통장엔 숫자가 차곡차곡 쌓였다.


신혼집은 아파트로 바뀌었고,

아이들도 새 벽지가 발린 자기 방이 생겼다.


주말마다 대형마트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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