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눈 속에서, 내가 사람처럼 느껴졌다

by 이지아

그날 밤,

단 한 줄의 고백과 이마에 닿은 입술 하나로,

나는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리허설이 끝난 밤,

기타 줄을 닦고 있던 내 옆에 조용히 형이 다가왔다.


"또 물집 났네."


내 손을 살펴보던 형은, 조심스레 내 손을 뒤집었다.


"약 바르자. 기타는 갈 수 있어도, 손은 못 간다."


말끝마다 스치는 웃음이 낯설었다.

며칠 뒤, 공연을 마친 밤.

분장실 앞에서 형이 다시 나를 불렀다.


"명순아, 잠깐 걸을래?"


피곤해서 그냥 집에 가려다...

왠지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용한 밤, 골목길에서
말은 없었지만, 발걸음이 서로를 닮아가고 있었다.

편의점 앞 자판기 커피 두 잔.
김이 피어오르는 종이컵을 마주 들었다.


"요즘 왜 이렇게 얼굴이 환해졌냐?"


"저요? 그런가..."


형은 웃지 않았다.
그냥 나를 보고 있었다.


"명순아."


" 나는 말이야... 무대 위에서보다 무대 밖에서 네가 더 좋아.”


" …네? "


" 노래할 땐 멋있어. 근데, 기타 줄 튕기기 전에 조율하면서
살짝 긴장한 네 얼굴 있잖아. 그게, 진짜 멋있더라."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형의 눈동자 안에서
내가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형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적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막 터지기 직전의 고요처럼.


" 명순아, 나는 네가 너무 좋아...."


그 말 한 줄에 심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말이 없었고, 형은 오래 기다렸다.

그러고는 아주 조용히 내 손을 감쌌다.


형의 손이 내 손에서 천천히 미끄러질 때,

나는 그 손을 더 꽉 잡고 싶었다.

하지만, 대신 조용히 숨을 삼켰다.


" 대답 안 해도 돼. 그냥... 알고 있으라고..."


형이 아주 천천히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 손끝이 스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숨이 차올랐다.


형도 내 손의 떨림이 느껴졌는지, 왈칵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뺨에서 열이 퍼졌다


형의 숨소리가 가깝게 내려앉았다.

피할 수도,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자 아주 천천히 입술이 내 이마에 닿았다.

이마에 스친 온기가 내 안의 겨울을 조용히 깨웠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손끝이 내 손을 다시 찾아왔다.


망설임 없이 그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멈추지 않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그날 밤, 나는 사랑받아도 괜찮은 사람이란 걸 처음으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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