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는 말이, 그렇게 잔인할 줄은 몰랐다
사장님이 불렀다.
" 명순아, 오늘 오신 VIP 손님 중 한 분이 네 팬이라 셔. 잠깐 인사만 해 줘.”
"... 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쿵 내려앉았다.
사장님은 내 표정을 살피지도 않고 내 팔을 살짝 잡아끌었다.
그 손길이 생각보다 강해서 내 팔목이 가볍게 저려왔다.
"그냥 잠깐 얼굴만 비춰. 어렵지 않잖아?"
사장님의 웃음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이미 단호했다.
손님들 테이블로 다가갈수록 내 심장이 뛰었다.
걸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기타 가방 끈을 꽉 쥔 손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잠깐 앉아서 인사만 한다는 자리가, 술잔이 오갔다.
한 잔을 받자, 곧 두 번째 잔이 따라왔다.
“그냥 앉아만 있으라니까.”
남자는 웃으며 다가왔다.
“무대 위보다 더 예쁘네요.”
웃는 얼굴이었지만, 시선은 축축하고 무례했다.
그의 손끝이 내 팔을 슬쩍 스쳤고, 온몸이 움찔했다.
양주를 몇 잔이나 마셨을까?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남자가 자꾸만 내쪽으로 당겨 앉기 시작하자,
숨이 턱 막혀왔다.
무언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무언가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죄송해요. 저, 몸이 좀 안 좋아서..."
속이 울렁거리가 머리가 지끈거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기타 가방을 움켜쥐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사장님의 다급한 목소리도 무시했다.
어둑한 골목을 지나 내 작은 방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가로등 불빛은 희미하게 번졌고, 발소리조차 내 것이 아닌 듯 멀었다.
숨이 차서 잠시 멈춰 섰을 때, 온몸에서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밀려들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닫고 주저앉았다.
희미한 방 안에는 눅눅한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창문 밖 골목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담배 연기와 욕설, 그 익숙한 소리마저 낯설었다.
며칠 동안 방 밖을 나가지 않았다.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낮에도 커튼을 열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담배 연기와 욕설이 뒤섞여 올라왔다.
이부자리하나 겨우 펼 수 있는 방안공기는 장마철 마냥 눅눅했고,
벽지 틈으로는 곰팡내가 퍼졌다.
방 안 구석엔 다 마시다 만 물 컵이 몇 개 놓여 있었고,
커튼 틈으로 흘러드는 빛도 이젠 방향을 잃은 듯 흩어졌다.
매일 저녁 비슷한 시간,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상진이 형의 발자국 소리.
그것이 내 삶의 유일한 시계였다.
처음엔 괴로웠다.
나 때문에 세상이 멈춘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발소리가 계속 들렸다.
문은 열 수 없었지만, 귀로는 매일 그 사람을 껴안았다.
마치 그 발소리가 고요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 하나가, 온몸에 퍼지던 무기력을 천천히 걷어냈다.
하루, 이틀... 달력의 숫자는 매일 줄어들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주말 장이 서고,
골목에선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했지만...
내 귀엔 그 소리조차 닿지 않았다.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축 쳐진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밥은 며칠째 굶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전화벨소리는 계속 울리는데 받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상진이 형의 발걸음은 매일 밤 같은 시간에 문 앞에 멈췄다.
그날 이후, 나는 여전히 문을 열 수 없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 문 앞에서 멈추는 발소리 하나가 내 하루를 버티게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조용한 골목에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곳에 멈추었다가 사라지는 소리.
처음엔 그 소리조차 죄책감으로 괴로웠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소리가 점점 기다려졌다.
문을 열 수는 없었지만, 나는 매일 같은 시간 문 앞에 멈추는,
그의 발소리에 기대 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