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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럽덥으로 향하다

럽덥 '취향 잡화점' 취재기

by 여정

지난 12월 중랑구 상봉동 한적한 동네. 주택가가 밀접한 공간에 위치한 럽덥에 방문하였다. 동네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조용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취향 잡화점'이라고 이름 붙은 전시. 지하에 위치한 전시 공간을 향해 움직였다. 내려가자 보이는 문에 붙은 포스터가 취향 잡화점의 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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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 최이슬 럽덥 대장이 반겨준다. 이 럽덥이라는 공간과 여기서 이루어지는 전시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면서 환영의 따뜻한 웰컴 티가 나왔다. 사과와 계피가 어우러진 따뜻하고 맛 좋은 티였다. 최이슬 럽덥 대장에 따르면 '럽덥'이라는 뜻은 의학 용어로 심장박동을 뜻한다고 한다. 2020년 처음 공간을 운영하면서 간호사인 동생과 함께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2023년 현재 전시와 이름이 같은 '취향 잡화점'이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3,4년간 했던 것들을 정리를 해보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좋다'라는 생각만 했었고 올해 다시 꺼내보니 '취향'이라는 뜻도 너무 좋고 '잡화점'스러운 이 공간도 좋아서 취향이라는 키워드를 더 파보자는 생각으로 취향 잡화점 전시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왜 취미가 아니고 취향이었을까'하는 의문에 무언가가 취미가 되려면 계속 그쪽 방향을 쳐다보고 있어야 취미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취향 잡화점 전시는 2주간 운영되었다. 운영하는 동안 여기 오는 분들에게 이 공간이 어떻게 보여졌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원래는 당일 행사를 생각했었다. 기간을 길게 바꾼 이유는 이 공간에 오는 분들이 여유 가득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된 작가들의 취향을 보면서 내 취향, 나는 어떤 방향을 보고 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던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던지 상관없이 여유 있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평소에는 "이 공간에 상주하지만 여럿이 오는 방문객들이 있다면 전시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자리를 비우는 편이다. 온전히 이 전시 공간을 누리는 방문객들을 보면서 이 마음이 전해졌다 느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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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전시에 대한 설명과 인터뷰를 마치고 전시 공간을 비로소 둘러볼 수 있었다. 넓지만 가득 차지 않은 이 공간. 비움에서 오는 안락함이 녹아져 있다. 이 사이로 채워진 작가들의 전시물들이 보인다. 어떤 전시를 먼저 볼까 고민하다가 공간이 주는 흐름대로 차례대로 둘러보기로 하였다. 취향 잡화점 전시에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취재를 나온 날 마침 전시에 참여한 작가 세 분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다.


"취향은 수집함이다" - 참여 작가 '수심티 하우스 대표 문소영'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차'이다. 들어왔을 때 마셨던 차도 문소영 대표의 작품이다. 문소영 대표는 '차'라는 취향으로도 이렇게 깊게 다가갈 수 있구나에 대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차는 어렵고 따분하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인식이 있다. 이 인식을 넘어서 차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차뿐만 아니라 이런 취향도 있고 저런 취향도 있어 한 번씩 소위 찍먹하는 느낌, 장바구니에 담아 가는 느낌처럼 경험하길 이번 전시를 통해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파트들이 있는데 방문객들이 오래 머물러 깊이 탐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점을 잘 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취향 잡화점이라는 전시에 참여한 작가인 만큼 취향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문소영 대표는 취향은 수집함이라고 답했다. "무형의 공간에다가 내가 넣고 싶은 걸 넣어두었다가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꺼내서 쓸 수 있다. 넣어두었던 게 당장은 재미가 없을지라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았을 때 다시 나의 취향이 될 수 있게 하는 순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가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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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대표에 차에 대한 열정이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

차라는 것은 맛과 향이 퍼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문소영 대표의 취향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계속 우려내었던 문소영 대표의 취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은하게 퍼져나갔고 오늘의 전시에 닿았다.


"취향은 설렘이다" - 참여 작가 '문프랜'

다음 전시로 눈길을 돌린다. 유독 천장에 걸려 있는 전시품이 많았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문프랜 작가는 무려 두 개의 취향을 전시하였다. 첫 번째는 작가가 직접 만든 뜨개 작품들이고 작가가 좋아하는 영화로 채워진 공간이 두 번째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취향에서 작가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사람들이 취향을 어려워한다며 이번 전시에서 담은 것들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취향이라는 게 어떤 기준이 있다거나 엄청 잘 알아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지 말고 다양하게 (취향을) 펼쳐 놓고 '이 중에 하나는 마음 가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것도 취향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데 이 중에 마음이 가는 곳은 어디야?'라고 물어보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없을 수도 있고 전시를 보면서 '아 맞다 나도 차 마시는 거 좋아해' 이런 걸 떠올린다거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감상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전시를 보고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없는데라고 생각을 할까 봐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보여주는 취향이 다양한 만큼 조금은 희석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방향의 취향을 전시한 만큼 포인트를 준 부분을 물어보고 싶었다. 문프랜 작가는 뜨개를 전시할 때는 처음에는 책장에 전시하려 했으나 최이슬 럽덥 대장의 '천장에 실을 달아 매달자'라는 의견을 반영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다른 취향은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계단 방을 참고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모두를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는 문프랜 대표는 "어떤 걸로 만들었는지 적어두었고 좋아하는 대사나 취향의 영화 포스터들을 배치했다. 나의 취향 전시가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문프랜 작가에게 취향은 설렘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설레면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취향을 디깅해서 간다는 생각 말고 설렘 단 하나를 이번 전시를 통해 느꼈으면 취향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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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프랜 작가가 직접 손으로 만든 뜨개 작품들. 장식품 뿐만 아니라 직접 착용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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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프랜 작가가 직접 모은 수집품들이 가득하다.

취향이라는 것은 기록이랑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단 번에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누군가의 꾸준한 기록을 보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취향은 단 시간에 정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취향은 마음이 향하는 것" - 참여 작가 '유광'

유난히 눈에 띄는 액자가 있다. 액자에는 여러 풀과 꽃들이 나름의 질서를 찾아 배치되어 있다. 이 질서가 조화롭게 느껴져서 하나의 작품을 연출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유광 작가의 압화(押花) 작품이다.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간 일기와 식물 관련 책들, 서랍 속 작가가 직접 만든 엽서가 매우 인상적이다.


유광 작가는 올해 여름부터 채집을 하여 만든 작품을 겨울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쁘게 볼 수 있는 압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한다. "압화뿐만 아니라 식물 기록이라는 테마로 이번 전시를 구성하였다. 식물 관련된 나의 일기와 여행에서 본 자연을 찍어온 사진, 엽서들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잘 가닿았다고 생각한다" 전했다.


끝으로 취향을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렵지만 마음이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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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서 채집한 식물과 여행지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통해 취향을 나타내었다. 취향이라는 것은 좋은 순간을 보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순간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취향이라는 것으로 묶어둘 수 있다는 것을 오늘 확인했다. 압화처럼 눌러두고 싶은 순간의 기억들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나의 형형색색 행복의 순간들을 눌러 담고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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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하는 동안 방문객들이 전시에 깊게 몰입하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 연출이 돋보인다. 저마다의 시선과 시간으로 천천히 이번 전시를 눈을 통해 마음에 담고 있었다. 한 방문객은 "남의 취향이지만 자신의 취향도 같이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한 "멀리서 온 보람이 있다. 다양한 사람의 취향을 구경할 수 있어 그 사람의 방을 들여다본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소감을 전한 방문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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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마무리하던 중 이번 전시 포스터 이미지를 디자인한 쿠스쿠스 디자인랩 이희영 대표의 말을 들어 볼 수 있었다. 포스터를 디자인할 때 담았던 의도를 물어보았다. 이희영 대표는 포스터에 보이는 봉투가 취향 마켓처럼 취향을 담아 갈 수 있게 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포스터에 있는 오브제 하나하나가 다 재질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사진으로 된 것도 있고 3D로 되어 있거나 유화 느낌이 나는 것도 있다. 이런 다양한 오브제들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전시를 둘러보며 이희영 대표는 디자인 한 의도대로 잘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운이 좋게 취재 중 참여 작가 세 분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세 분의 전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취향 잡화점에는 담지 못한 취향들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작은 레코드에 담았다. NFC 기능을 이용하여 그 사람의 취향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수 있다. 가장 안쪽에는 누군가의 기록이 가득 담긴 공간이 있다. 한여름의 추억이 담겨 있고 조금은 비밀스러운 기록들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 혹은 기록 모두 편집되어 전시되어 있다. 취향은 편집(Edit) 되어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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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테이블 뒤로 보드게임이 잔뜩 쌓여 있다. 게임은 떠들썩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취향은 재미있는 것에서 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취향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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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마저 스펙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취향은 억지로라도 챙겨놓아야 할 것 같은 스펙이 되어간다. 스펙을 쌓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취향은 어려운 것이 되어 간다. 그러나 취향 잡화점 전시를 우리는 보고 느꼈다. 우리의 마음을, 아니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향하게 하는 곳에 취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 취재를 마치면서 나의 마음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확인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몸이 그쪽으로 기울듯이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고 설레게 하는 것들을 앞에 두고 우리의 몸은 어디를 향해 기울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기울기를 발견한다면 나의 취향을 계속 잘 가꾸어 줄 수 있도록 하자. 잘 가꾸어진 취향은 나를 온전히 나타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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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마치고 감사를 전하며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럽덥 대장 최이슬

수심티 하우스 대표 문소영

문프랜 작가

유광 작가

쿠스쿠스 디자인랩 이희영 대표

방문객 인터뷰 참여해주신

캡보이 님

지구 님


전시 모습 촬영을 허락해주신

캡보이 님

유광 님


장소

럽덥(LUBDUB)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취재 날짜 : 2024.12.15

기사 작성 : 2025.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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