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결〉

설명할 수 없는 흐릿함의 정체

by 리다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이 있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무기력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상태.

아무 말도 하기 싫고
누군가의 말은 더 듣기 싫고
책을 펼쳐도 글자가 들어오지 않는 그런 날.

나는 오래 그 흐릿함을 싫어했다.
“왜 이렇게 멍한 걸까.”
“혹시 우울한 걸까.”
이유를 붙여보려 했지만
단서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흐릿함은 감정이 아니었다.
이름도 표정도 없는,
그건 그냥…
어떤 결이 빠져나간 자리 같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흐릿함의 정체는
삶의 의미가 잠시 끊긴 상태였다.

무언가 하고 있지만
그 일의 ‘왜’를 잃어버린 날.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관계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날.
아침에 일어나지만
하루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유를 잃은 날.

흐릿함은 비어 있음의 얼굴이었다.

그날의 나는
새로운 의미를 찾으라는
아주 작은 손짓을 받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흐릿함을 밀어내기보다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보는 것이
오히려 방향을 돌리는 지름길이었다.
의미는 밀어붙여도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쉬고, 멈추고, 바라볼 때
조용히 곁으로 돌아와 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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