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산책이고요
아직 신혼이라면 신혼이라서 그런지 '둘이 주말에는 뭐 해?'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매주 어디 놀러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주로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거나 산책한다는 말은 진심인데, 심심하지 않냐는 피드백이 돌아올 때도 있다. 그럼 나는 '그냥 좀 늙은이 취향이죠 뭐. 허허'하며 웃어버린다.
원래 나와 남편은 집돌이 집순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은 피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뭉쳐있는 것은 보기만 해도 힘든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다. 특히나 출퇴근길과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기 때문에 고요하게 쉴 수 있는 주말이 정말 소중하다.
집에서 이것저것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한적하게 걷기 좋은 길거리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한다. 차 타고 가면 20분이면 갈 수 있는 행선지를 한 시간이 걸려서 걸어가더라도 날씨만 좋다면 걷는 것을 선택해 버리는 우리는 걷는 건 자신 있는 부부다.
산책은 현재에 충실히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인생에서 가장 쉽게 누릴 수 있는 유희이자 선물이다. 산들바람과 발의 감각, 눈가에 밟히는 초록초록한 자연과 꽃, 산의 풍경과 동물들과의 만남들이 바로 그런 요소들이다. 조용히 걷거나 떠드는 날도, 빨리 가거나 천천히 걷는 날도, 음악을 듣는 날도, 새의 지저귐을 듣는 날도 있다. 운이 좋은 날은 쫀득한 붕어빵을 주며 전도하시는 교인 할머니를 만날 수도 있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산책은 전혀 지루하지 않은 행위임에 틀림없다.
둘이라면 걸어 다니며 잡는 손을, 온전히 집중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즐기기에, 특히 생각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이라면 생각을 정리하며 나만의 시간을 보장받는 기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 좋다. 때론 지나가는 사람과 풍경들을 보며 나의 내면에만 갇히지 않고 외면에 잠시 머물러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움직여 걸으니 당연히 몸에는 좋을 것이고, 정신 건강에도 이렇게나 좋으니 산책은 인생에 꼭 필요한 환기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좋은 점만 있냐고 물으신다면 단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긴 하다. 벌레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날갯짓을 할 시기가 성큼 다가온 것 같다. 겨울에는 땅바닥에 똥이 있나 만 살피면 됐지만 이제는 조금 더 긴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날파리와 지렁이, 까만 콩벌레, 까만 알 수 없는 벌레, 큰 벌레, 작은 벌레, 노린재, 송충이 등...
산책을 자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보너스가 있는 날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동네 번화가라도 걸어가다가 어떤 아저씨의 엉덩이가 마침 지나가는 타이밍에 딱 맞게 '빠박!!'하고 폭죽 같은 무언가를 터뜨려주는 날 말이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놀랐으나 뇌를 차마 거치지 못한 생웃음은 정확히 약 3초 후에 터져버린다. 함께 걷던 이와 눈을 마주치면 그 방귀소리가 남다른 이유에 대해 토론하면서 일주일치 웃음 할당량을 채운다.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 웃음의 축복을 걷다가 공짜로 만난 것이니 감사하는 것은 기본이다.
'빅뱅 노래 중에 방금 들은 그 음으로 시작하는 거 있는데'
'빠빠 박박 박박! 빠바박 바바바박!
난 깨어나 까만 밤과 함께~'
(빅뱅 - 뱅뱅뱅)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그 계절이 가장 잘 드러나는 길을 걸어보는 게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 오들오들 떨며 패딩을 입은 것 같은데 청명을 지나면서 하얗고 분홍분홍해진 거리를 보니 여유 생길 때마다 자꾸만 걷고 싶어지는 계절이 돌아온 듯하다. 이 벚꽃은 매년 보는 흔해빠진 것일지도 모르는데도 늘 그렇게 설렌다. 일 년을 참고 만나서 더 그런 건지, 이게 돌고 도는 사계절의 매력이라면 매력인 건지, 아니면 내가 산책을 유달리 좋아해서인 건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설렘을 머금은 얼굴로 환영받을 이유뿐이라니 벚꽃은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