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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May 12. 2024

나의 이름은

 나와는 다르게 받침 없는 이름은 깜찍하고 외자 이름은 유니크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디제이가 되겠다고 두 번이나 이름을 지었을 때도 거기에 받침은 당연히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살아오는 내내 줄곧 불편한 마음으로 성명란에 꼬박 써오던 내 이름. 나는 내 이름이 만족스러웠던 적이 별로 없다. 어쩌면 언제나 이름을 바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딱히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생각도 없는 채로 말이다. 그저 이름에 받침이 있는 게 싫었고 내 이름 그대로 영어로 바꾸기도 쉽지 않아 싫었다. 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아무리 알려줘도 어처구니없이 읽었기에 '로즈'나 '제니'같은 영어이름을 만들어왔지만 그마저도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함정이다. 스스로 이름을 만족스럽게 만드는 일도 꽤 어려운 일이다.


인생의 우울한 시점들을 마주할 때에는 왠지 이름에서 오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어 내가 이렇게 살게 된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개명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지며 이 이름에 모든 원망을 뒤집어 씌울 뻔도 했다만, 나와 가장 가까운 인물의 개명 이후에 따라오는 갖가지 불편한 과정들을 마주하는 것들을 보아하니 이런 의욕을 꺾을만한 정도였고 이를 극복할 용기가 생길 때까지는 개명신청은 무기한 미뤄질 예정이다.


나의 이름은 옛 어른들의 일이 그렇듯이 누군가의 입김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렇든 저렇든 싫든 좋든 이 이름을 지니고 살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름에 대한 불만이 나한테만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된 시점은 우리 엄마가 하필이면 맞춰 짓기도 어려운 남자들이 많이 쓰는 이름을 중간에 꼭 돌림자이기에 넣어야 한다는 그 압박이 무척이나 싫었다는 고백을 했을 때였다. 엄마는 딸의 지금 이름도 물론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강압적인 압박에 의해 지은 것 자체는 조금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어렵게 고르고 생각한 자식의 이름들이 있었을 터인데 이중에서는 결국에 고를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아직도 있는 듯했다. 그 시절, 그때였기에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거라는 걸 안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예쁜 이름을 원하는 대로 바꿔보라고 때마다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오고 있다.


어릴 때 이사를 참 많이 다녔기 때문에 전학도 참 많이 다녔다. 친해질 만하면 옮겨 다니는 슬픈 상황들이 잦아졌고 늘 새로 만나게 되는 여러 친구들과 빨리 어울리고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자기소개를 하고 난 뒤 이름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은 좋지만 '정말?'이라는 물음표가 떠나질 않았다. 이름자체에 대한 칭찬은 나에게 그렇게 좋게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름이 풍기는 이미지나 분위기에 갇히는 건 아닐지 항상 경계해 온 것 같기도 하다. 우당탕탕한 사람이 하필이면 부드럽고 여리여리 순한 성품을 가졌을 것 같은 이름을 가져서 부담을 가진 건 아니었을까. 뭐 꼭 어울리는 이름을 가져야 하는 법은 없지만, 참 나도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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