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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Sep 25. 2023

짜릿하면서도 허무한 복수의 의미

[소설] <테티베어는 죽지 않아> - 조예은


평소 싸우기를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성격 때문에 나는 복수를 다짐할 만큼 크게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없다. 그래서 복수라는 단어는 내게 낯설고, 껄끄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나 역시도 타인이 주는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있다.


때로는 이러한 감정이 나를 더 힘차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깨닫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죄의식을 느꼈다. 타인을 미워하고, 되갚아 주려는 부정적인 에너지는 나쁜 것이라고 배웠었으니까. 하지만 부정적인 에너지를 나쁜 것으로만 취급하기엔 너무 억울했다. 분명 질투나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잘 다스릴 수만 있으면 충분히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 모든 감정이 혼합된 복수라면 더더욱 말이다.


복수라는 큰 목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최근 유행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복수극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은 장르다. 복수극 특유의 자극적인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쾌감은 액션과 스릴러 장르와 만날 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다.


 <칵테일, 러브, 좀비>로 내게 큰 충격을 주었던 조예은 작가의 신작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3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다. 스릴러와 공포, 액션이 적절히 석인 이번 신작 역시 조예은 작가다운 제목과 장르라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안전가옥 출판사의 작가 발굴력과 다른 출판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시도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 조예은 (2023) *이미지 출처 : Yes 24


복수를 위한 삶과 인정을 위한 삶


복수를 앞둔 사람은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망설임을 최소화할 수 있다. p.325


책에선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열일곱 살의 소녀 “화영”은 에코시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엄마를 잃은 학생이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최고급 아파트 단지에 독이 든 떡을 돌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의 피해자 중에는 화영의 엄마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평소 절대 떡을 먹지 않는 엄마의 식성을 알고 있던 화영은 이 살인 사건에 또 다른 가해자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화영은 자신의 엄마를 죽인 진짜 살인범을 밝혀내기 위해 청부 업자에게 지불할 돈을 악착같이 벌어낸다. 목표는 2,000만원. 화영은 미성년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아르바이트와 기부금 횡령, 불법 마약 거래 낚시 등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엄마의 복수만을 위해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도망칠 거면 나도 데려가.” p.50


그리고 이곳 야무시에서 하루하루 버텨가는 또 하나의 삶이 존재한다. 야무시를 대표하는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열일곱 살의 “도하”. 도하의 아빠는 언제나 자기 형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피해의식에 찌들어 있었고, 이러한 울분을 아들인 도하에게 표한다. 매일같이 사촌 형 “도현”에게 비교당하는 도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오직 돈을 위해 살아가는 삶과,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은 우습게도 현대인들에게 참 익숙한 삶이다. 그들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진정한 복수.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


“너희는 이다음에 대해 생각해 봤어? ... 삶은 끔찍하게 길어.” p.326


화영과 도하는 각자의 복수를 위해 함께 여정을 떠난다. “낚시”라고 불리는 암거래에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며, 구원자라고 믿었던 살인청부업자에게 뒤통수를 맞는 등 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은 채 복수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여정의 마지막 순간, 복수를 끝마칠 단 한 걸음의 발자국만이 남게 되자 그들은 주저하게 된다. 과연 진정한 복수는 무엇일까? 또, 복수가 끝나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


복수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분명 내가 먼저 상처받았고, 명백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복수하는 사람을 오히려 더 나쁜 사람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복수가 아닌 관용과 용서를 미덕이라고 여긴다. 대부분의 복수극에서 복수의 끝은 결국 허탈감뿐이라며 더욱 비관적인 삶으로 그려낸다.


물론 복수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해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복수심이란 그리 계산적이거나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다. 많은 복수극이 그러하듯 복수에만 집중한 삶은 주인공에게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상대방에게 아무런 복수도 못 한다는 그 무력감은 더 크게 나를 망가뜨릴 수 있다. 다양한 현실의 사건들을 통해 마음속 응어리가 계속해서 쌓인다면 결국 터져버린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는 이제 복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쨌거나 복수에 대한 나의 결론은 스스로를 위한 복수를 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남을 망가뜨리는 것은 사실 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끌어내리는 그 쾌감은 자극적이고, 단기적일 뿐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원한이든, 사회적인 사건이든 누군가에 대한 증오가 끓어오르고 이를 되갚아 주고 싶다면, 차라리 스스로를 위한 복수를 택하길 바란다. 남의 삶을 망가뜨리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가 충분히 응어리를 풀어낼 방법으로 복수를 끝마친다면, 끔찍하게 긴 삶을 복수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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