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칼럼#7] - 끊기지 않는 연결의 위험성
책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에서 1인 출판사 사우다지북스의 대표 아사노 다카오는 이런 말을 하며 미래에도 종이책이 충분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종이책을 읽는 시간은 누군가와 공유하기 어렵습니다. 타인이나 일상과의 경계가 끊겨야 혼자 있는 시간이 깊어지죠. 깊은 고독 속에서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시공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끊겨야 연결되는’ 미디어가 그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p.191
외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부터 고립된 채 고독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종이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끊겨야 연결되는 미디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듣자 강한 확신이 들었다. 세상과 무한히 연결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종이책과 달리 SNS는 ‘끊기지 않는 연결’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상대방이 누구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소통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쌍방향 멀티미디어가 처음 등장했을 시기에는 모두가 이러한 특성이 굉장한 이점이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도 동의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끊기지 않는 연결의 부작용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야만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러한 연결이 끊기면 극도로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지난 2018년. 한 통신사에서 화재 사건이 발생하여 모든 연결이 차단되었을 당시, 대한민국은 혼돈 그 자체를 마주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인터넷 접속부터, 전화, 메신저 등 일상을 이루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중단되자 사람들은 돌연 원시인으로 되돌아갔다. 디지털이 사라지자 사람 간의 연결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이미 전 세계인들은 미디어 중독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하루종일 미디어에 연결된 삶을 중독이라고 표현하기도 뭐하다. 중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끊기지 않는 연결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현대인들은 이러한 상황에 딱히 경각심을 갖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 내 손에 핸드폰이 없으면 대부분의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놀랍게도 일상의 주인공이 된 이 핸드폰을 자발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라 불리는 이 활동에선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를 반납한 채 대면으로 만나 활동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함께 책을 읽거나 손을 움직이는 소활동 등을 하며, 아날로그적 연결을 추구한다. 디지털 디톡스 활동을 통해 놓쳐버린 일상의 소중한 감각들을 다시 느끼려는 것이다.
‘쉼’이라는 개념도 과거와 많이 변했다. 과거, 미디어가 발전되기 이전 ‘쉼’의 형태가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산책하거나, 책을 보거나, 잠을 자는 등의 활동이었다면, 현재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게 일반적인 쉼이다. 그러나, 정말로 누워서 핸드폰을 바라보는 걸 진정한 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영상을 보는 것 역시 에너지가 소비된다. 육체적으로는 편안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뇌는 쉴 틈 없이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시각, 청각의 자극은 끊이질 않는다. 현대인들이 쉬어도 쉬어도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정보가 넘쳐남에 따라 사람들의 기존 상식 또한 변화했다. 매일 수백, 수천 편씩 올라오는 유튜브 영상과 뉴스 기사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트렌드를 놓치면 왠지 모르게 우리는 손해 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정보를 습득하는 것만이 정보화 시대에서의 이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정보를 소화하기는커녕 습득하는 과정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미국의 뇌과학자 다니엘 레비틴은 “정보는 물과 같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무한정으로 섭취하는 것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하며 무한에 가까운 정보화시대에서 정보의 무조건적인 수용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컴퓨터와 달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한정되어 있지만, 무리하게 그 범위를 넓히려 하니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으면서도 더 잦은 허기를 느끼는 게 아닐까?
디지털로 연결되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이제 끊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앞서 말했듯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원할 것이며 정보는 더욱 빠르고 거대하게 밀려올 것이다. 끊겨야 연결되는 미디어에서 가능성을 바라본 1인 출판사처럼, 일부러 고독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처럼, 스마트폰의 전원을 종료하고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우리는 의식적으로 연결을 끊어내야 한다.
스마트폰의 화면 만이 21세기의 연결점은 아니다.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가 미쳐 인지하지 못했던 연결점들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결은 아마 그곳에서 더 많이 발생하지 않을까? 이제껏 시야를 좁히고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주위의 풍경을 돌아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