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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Feb 28. 2023

서울은 고독

[소설] <위대한 개츠비> 서평 - F. 스콧 피츠제럴드 



서울을 동경했다. 그리 멀지 않은 경기 남부에 살고 있었지만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 대한민국의 수도, 모든 활동의 중심지인 서울에 가고 싶었다. 대학에 뜻이 별로 없었지만 입시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서울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고, 취직을 하고 싶은 이유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사원증을 지닌 채 서울 한복판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울은 언제나 환상의 도시. 동경의 장소. 꿈이 펼쳐지는 유토피아였다.


기숙사 생활과 함께 시작한 서울생활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내가 살던 곳과 달리 지하철은 약 2분마다 정차했고, 어느 지하철 출구에나 스타벅스, 올리브영, 롯데리아 등의 매점이 존재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은 북적였고, 웬만한 식당과 카페에는 웨이팅이 기본이었다. 역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고독한 서울의 뒷면을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는 "서울"이었다.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허영심과 자존심으로 가득 찼고, 누가 누가 더 잘 살고 있는지 기싸움을 하는 듯했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화에서 공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 없었으며, 하나같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기 소리를 내지를 뿐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너의 말은 무조건 틀렸고 일단 내가 맞다.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이 텅 빈 껍데기가 되더라도 더욱더 몸을 부풀린다.


롱 아일랜드 최고 부자 개츠비가 매주 여는 파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한다. 담배 수입업자, 주 의회 상원 의원, 전 미국 재향 군인회 회장, 공작, 집시, 무슨 직업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등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 대부분이 개츠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개츠비와 서울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울 = "실체 없는 개츠비"인 것이다. 


분명 서울은 화려하고, 멋있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빛나는 우리나라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내면은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다. 파티가 끝나고 개츠비의 대 저택에서 암흑 속으로 돌아가는 무명의 사람들처럼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생기를 찾아볼 수 없다. 파티라는 집합점(서울에서는 업무, 지인들과의 저녁 약속, 혹은 데이트 등이겠다.)이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어깨동무를 나눴던 사람들은 타인이 되고 시야에서 벗어난 순간 평가와 뒷담화를 숨기지 않는다. 타인을 멀리하며 스스로 고독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도시인 서울에서 특히 잘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21세기에 만연한 개인주의를 직접 경험한 우리에게 고독감은 비단 서울에서만 발생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별로 인기가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 난 성대한 파티를 열지 않으니까. 친구를 사귀려면 자기 집을 돼지우리로 만들어야 하나 보더군...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말이야." p.185

하루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에서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경이로운 경제 성장률, 100년도 걸리지 않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다. 하지만 왜일까. 남들보다 더 높게, 더 멋있게, 더 위로 향할수록 개인은 고독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일했던 동료의 어깨를 밟고 위로 올라가고, 더 높은 수치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줄인다. 덕분에 개츠비의 대저택인 서울은 점점 화려해지지만 결국 그 파티를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서울을 동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을 원했던 것일까. 단순히 꺼지지 않는 불빛에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그저 아메리카노와 함께 사원증을 맨 직장인의 "겉모습"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까지 술에 취해 즐거워 보이는 "찰나의 순간"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 잠깐의 순간이 서울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인구 천만명이 넘는 대도시에 "고독"이라는 단어는 없을 줄만 알았다. 잠깐이지만 1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통해 서울의 고독을 맛본 나는 하루의 달콤한 파티를 즐기기 위해 99일 동안 표정을 찡그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지금도 여전히 서울 곳곳은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겠지만, 그 내부에는 새까만 어둠이 가득할 것이다. 막대한 재산과 수백 명의 지인을 두고 있음에도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새벽녘 개츠비의 대저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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