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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r 11. 2023

말 없는 난민, 고독한 비정규직

[소설] <버샤> 서평 - 표명희


나는 작은 것들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오래된 노트에서 장난스러운 메모를 발견하거나, 일상의 사진 속에서 특이점을 발견하는 일들에서 사소한 행복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내 감정의 출발선은 화려하고 멋들어진 결과물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장면에서 시작된 듯하다. 지금 버스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역시 일상의 작은 행복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작은 것들의 행복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엔 의식적으로 나의 시야를 좁히려고 한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 위하여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해야 한다는 나의 가치관은 변하지 않지만, 그 시선의 끝이 목적달성과 대의명분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욕심을 줄이려고 한다. 때로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더 오래도록 기억되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표명희 작가의 장편 소설 <버샤>는 우리가 지금껏 집중하지 않았던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실어증에 걸린 난민이자, 무슬림 가정 속 맏딸로 자유를 억압받는 “버샤”와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국제공항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된 “진우”가 공항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함께 자유와 사랑을 꿈꾼다.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사회에서 “소수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의 지위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처참하다. 남자는 가해자여도 거리낄 게 없지만 여자는 피해자여도, 아니 피해자여서 또 죄인이 되는 게 우리 이슬람 문화다.(p.62)라고 말하는 버샤의 독백에서 아직도 사회 속 만연한 성차별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평등을 주장하는 종교임에도 관습적으로 남아있는 여성차별적인 모습을 “쿠란에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엄연히 나와 있는데도 그들은 ’남녀유별‘이라는 이름으로 여자들을 소외시키는 걸 당연시한다.”(p.129)라는 문장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도하는 구역을 나누거나, 학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습을 보며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가 성별 제한 없이 모두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버샤는 무슬람인 동시에 “실어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자발적으로 세상과 담을 쌓았고, 입을 닫는 무언의 시위를 통해 “아이샤”라는 제1의 인격을 포기했다. 그러나, 냉혹한 사회는 그녀의 “실어증”을 바이럴의 수단으로 삼기에 이른다. 기자들은 실어증을 앓고 있는 버샤에게 실어증을 “치료”하고 싶지 않냐고 묻고 계속해서 그녀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극단적 무슬림인 그의 아버지마저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난민인 우리의 상황을 더욱 알릴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사회는 소수자의 인권보다 “돈이 될만한 것” “자극적인 것” “기사거리가 될만한 것”들에 집중하여 작은 이야기들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이용한다. 누구도 그녀의 서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이유와 결과만을 요구하고 있으니 세상에 작은 이야기들이 살아남을 리 만무하다.


공항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진우”역시 소수자로서 외면받기는 마찬가지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과 함께 먼저 정규직이 된 그의 친구 "종현"을 은연중에 질투하며 고독하게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명함 한 장 없이 막연한 미래를 준비하는 그 모습이 마치 취준생의 칭호를 갖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그러나 소수자의 우연한 만남으로 그들의 일상은 크게 변화한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않았던 소수자들은 서로를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받아들인다. 실어증인 무슬림이라도, 비정규직인 공항직원이라도 그들은 외적인 모습으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더욱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연대에 더해진 사랑의 힘은 일반인의 사랑보다 더욱 견고해 보인다.


소수자의 작은 이야기. 그 섬세한 사랑의 이야기를 함부로 “공감”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항 난민도, 비정규직도 돼 보지 못한 내가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아가미로 숨을 쉬는 물고기의 입장을 헤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 일테다. 그들이 원하는 것 역시 그들의 서사를 100% 공감해 달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계속해서 작은 이야기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소수자의 목소리에 순간이라도 경청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작은 것들이 바라는 것이자 현대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간직해야할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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