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음이 되어
옷장에 반팔이 가득하길래 아직 여름인 줄 알았는데 가을이었다. 낙엽이 지길래 가을인 줄 알았더니 이제 입동이란다. 나에게 겨울의 시작은 언제나 수능날이다. 매년 11월 둘째 주 목요일(가끔 셋째주가 될 때도 있지만)이 되면 겨울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기억상으로 수능 날마다 칼바람이 찾아온 듯한데 벌써 수능을 치른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추위는 잊지 못한다. 한 손에는 보지도 않을 각종 참고서들을 다른 손에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끓여주신 밍밍한 된장국이 담긴 도시락통을 들고 수험장으로 향한 그 길이. 그 추위와 냄새가. 어머니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호루라기 소리에도 꿈쩍 않고 서 있는 차들의 행렬이. 경찰관의 경직된 수신호가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우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어 때때로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대부분이 그렇듯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당장 5분 뒤의 내가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질 수도 있는데 1년 뒤 내가 어느 대학교에서 학식을 먹고 있을지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당시 예상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고, 예상대로 부모님은 굳이 점수를 물어보시지 않으셨고, 예상외로 눈물은 나지 않았다. 끝났다는 후련함보다는 허무맹랑한 감정이 들었다. '정말 끝난 거 맞나?', '수년간 준비해왔던 것이 하루 만에 끝났다고?', '모의고사처럼 그냥 맞다고 치면 안 되는 건가?' 허무한 감정이 온몸을 가득 채웠고, 헛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은 계속 히죽대는 나를 보며 "너 수능 정말 잘 봤구나?"라고들 했는데 그건 아마 내가 제대로 웃는 방법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수험생 시절 웃을 날이 별로 없었는데 헛웃음으로 1년치 웃음을 다 채워버렸다.
4년이 지난 지금 "수능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에 극히 공감한다. 주변에도 수능을 보지 않고 벌써부터 자립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친구들이 빽빽하다. 하지만 4년 전의 나에게는 "수능이 인생의 전부였다." 원래 개미는 베짱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조언과 인생 선배의 멋들어진 강연도 내가 느껴보지 못하다면 말짱 꽝이다. 해가 뜨기도 전부터 달이 질 때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한 아이들에게 수능이 전부가 아니면 도대체 뭐가 전부란 말인가. 수능이 전부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나의 히스테리도 다 받아주고 부족한 형편에 고기도 구워 주었나. 2017년 한 해 동안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수능은 인생의 전부였다.
여차저차해서 대학에 입학하고 이러저러해서 군대를 다녀오고 얼렁뚱땅하게 복학생이 되어보니 좀비처럼 지내던 나의 수험생 시절이 아주 아름답게 미화되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을 한 작자에게 멱살이라도 잡고 "네가 매일매일 12시간 동안 공부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가 한 말이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된다. 개구리에게 우물 밖은 너무도 넓었고, 무섭고 외로웠으며, 황폐하고 이기적이었다. 이제는 황소개구리쯤 되어버린 나에게 매끈한 저 청개구리는 씁쓸한 아메리카노였으며 달콤한 츄파츕스 사탕이었다.
츄파츕스 사탕보다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더 많이 찾게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수능을 보기로 했다. 물론 한 손으로도 버거운 "수학의 정석"을 펼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수능을 (지켜)보기로 했다. 수능 전날 아침 7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었다. 4년 전까지는 아니지만 떨려왔다. 물과 기름 같던 기대감과 두려움을 섞어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밍밍한 된장국이라도 끓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게 얼마만일까. 하지도 않던 이상행동을 하니 침대가 제정신이냐며 얼른 다시 누우라고 했다. 평소라면 역시 너밖에 없다며 알람을 끄고 잤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모자와 옷을 입고 나가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다. 나 정말 게으르게 살긴 했나 보다.
"나 수능 보고 오려고."
재차 묻기 전에 얼른 집을 빠져나왔다. 황당해하는 어머니의 표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웃으면서 시작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출근시간임에도 긴장하며 운전하는 차들이 눈에 보였다. 학교를 지나는 길이 큰길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들이 자발적으로 빙 돌아간다. 암묵적으로 빨간 날이 되어버린 수능날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려고 애쓰는 듯 보인다. 나도 조용히 눈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집 근처 고등학교가 보이는. 그렇지만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한참 동안 학교를 바라보았다. 경찰관을 바라보았고, 비상등을 켠 차들을 바라보았다.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학교 앞에서 헤어지길 망설이는 수험생을 바라보았다. 슬리퍼를 신고 뛰어가는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학교가 아닌 놀이터로 향하는 학생을 바라보았다. 불법 유턴을 하면서 경찰관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어딘가로 출동하는 경찰차를 바라보았다. 아들을 들여보내고 한참 동안 서있는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2분 남았음에도 신호를 지키는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또 2분이 넘었음에도 꾸역꾸역 들어가는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담배를 물며 어딘가로 전화하는 수험생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능을 봤다.
수험생의 마음으로, 부모님의 마음으로, 경찰관의 마음으로, 신호등의 마음으로, 도시락의 마음으로 수능을 봤다.
일찍 일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왜인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숙연해지기도 했다. 기쁘기도 했고 초조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밀려왔다. 그렇지만 결코 싫지 않은 감정이었다. 계속해서 이 감정들을 음미하고 싶었다. 좀 더 복잡하게, 더 어지럽게 꼬인 감정들을 간직하고 싶었다.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느끼고 싶었다. 내가 느낀 감정들을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도록. 나만이 간직하고 나만이 추억할 수 있도록. 나 때문에 당신의 감정이 변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고 싶었나 보다. 참 이기적이지만 그러고 싶었다. 수험생이니까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욱더 아이처럼 굴었다.
매년 겨울이 찾아오면 난 다시 아침 알람을 설정하고 수능을 보러 갈 생각이다.
별안간 두 번째로 보는 수능이었지만 이번 수능은 망치지 않고 잘 본듯하다.
이미지 출처 : 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