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눈을가리지만손가락사이로내눈은번뜩이고있어.
20살 때의 일이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숫자만 채워졌을 뿐 몸과 마음 모두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달라진 게 있었다면 이제 부모님의 허락 없이 자정을 넘어서까지 밖에 돌아다닐 수 있었고 술에 취해 밤늦게까지 길거리를 배회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는 것. 아직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고 큰일이 생겨도 혼자 해결하지 못해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 어린아이였다. 다 큰 성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크기는커녕 줄어들지만 않았으면 다행이었던 20살.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속담은 이런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속담이 아닐까 싶다.
나는 대학교에서 술을 잘 마시기로 소문이 났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호기심에 홀짝이던 알코올 몇 방울을 제외하곤 제대로 술을 마셔보지도 않던 나에게 "너 술 되게 잘 마신다."라는 말은 나를 흥분시키기 충분했고 어른의 맛이라는 소주가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목 구녕으로 알코올 덩어리를 넘기기만 했다. 쓰디쓴 속과 더불어 입속 가득한 텁텁함보다 당사자는 정작 기억도 하지 못하는 칭찬 한 마디가 왜 그리 좋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한심하지만 20살만이 가질 수 있는 계륵 같은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름의 객기를 부리며 나름의 청춘을 즐기던 어느 날, 처음으로 가위란 것에 눌렸다. 들었던 대로 몸은 움직이지 않고 정신은 생생했으며 덜컥 무서운 감정이 나를 덮쳤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면 가위가 풀린다는 말은 거짓말이었고 아무리 소리쳐도 어린아이의 고함은 목구멍에 머무를 뿐이었다. 눈을 감으면 낯선 나무의자가 빙글빙글 돌아갔고 눈을 뜨면 방문 넘어의 거실이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찌할 바를 몰라 눈을 감고 뜨길 반복했고 거실이 빙빙 도는 건지 의자가 성큼 다가오는 건지 헷갈릴 때쯤, 사실은 내가 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때쯤 가위에서 벗어났다. 10분 같았던 1분. 아니 더 짧았을 수도 있는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한 것을 보면 꽤나 큰 충격이었나 보다. 멀리 있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졌다. 아기처럼 어머니의 품에서 웅크리며 눈을 감고 싶었다.
이후로는 이틀에 한 번꼴로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잦은 술자리 때문인지 호기심으로 시작한 담배 때문인지 건강은 계속해서 안 좋아지고 가위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토록 무섭고 두려웠던 가위도 하루 이틀 꼴로 눌리다 보니 반가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떤 것이 나올까. 이대로 깨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저 괴물에게 잡아먹히면 꿈이 끝나는 걸까. 나는 가위를 즐기기 시작했다. 의식 있는 꿈을 꾸며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상상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친구가 꿈에 나올 때면 못된 짓을 하기도 하고, 억만장자가 되어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자각몽이 일상이 되자 가위가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현실을 즐기기보다 꿈을 즐기다니 참 안타깝다.
자각몽이 좋지 않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난 뒤. 이제 술자리가 그닥 재미없어질 즈음.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고 느낄 때. 가위는 스스로 물러났다. 기묘했던 경험도 익숙함에 점점 잊혀갔나 보다. 어느 순간 어? 나 요즘 가위에 눌리질 않네. 왜지? 스스로 이유를 물었던 건 다행이라는 감정이었을까 아쉽다는 감정이었을까.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가위라는 취미를 혼자 가진 기분이라 설명할 수 없는 우월감에 빠져있었는데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리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일부로 술을 마시고 피곤한 상태로 잠에 들어도 가위는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잠수이별 당하다니. 속상하다.
그러다 최근에 가위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이젠 기억 속에서 잊혀만 갔던 옛 연인이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당혹스러운 감정이 몰려왔다. 오늘 피곤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들리지 않을 고함을 쳤다. 역시 정직하게도 10분 같은 1분이 지나자 가위는 물러 갔고. 나는 땀에 젖은 채 멍하니 침대를 바라보았다. 아. 기분 더럽다. 물을 마시고 세수를 했다. 더러운 기분이 씻어지지 않았다. 나는 무엇이 좋아서 가위를 좋아했었나. 내가 정말로 가위를 즐겼던 게 맞을까? 이 역겨운 기분을? 내일 다시 찾아오진 않을까? 오늘 잠은 다 잤다.
가위에 눌리는 것이 좋았던 것일까. 새로운 경험이어서 좋았던 것일까. 가위에 눌렸던 그때가 좋았던 걸까. 멋모르고 지냈던 20살의 그때가 좋았던 걸까. 익숙해졌기 때문에 가버렸던 것일까 아니면 사라지길 원했을까. 아니 사라지길 원했었나? 잘 모르겠다. 반가움보다 역겨운 기분이 앞선 건 단지 가위의 더러운 기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과거의 나를 지우고 싶었는지. 진정 가위를 즐기긴 했었나 싶다. 부끄러운 20살의 내 모습을 지우고 싶다. 무척 그리워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다시 돌아간다면… 아니 그래도 20살의 나는 너무 싫다… 그래도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아니 그때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나는…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가위가 그립다. 그리워도 마주치기 싫다. 한 번쯤은 다시 가위에 눌리고 싶다. 그래도 막상 눌리니 너무나도 더럽다. 어쩌면 가위 너는 과거의 내가 아닐까 싶다.
너를 원망하면서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줘. 죽은 듯 가슴 한켠에 자리 잡아 살아가다가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나를 찾아와 줘. 쓸모없는 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에게 길을 가르쳐줘. 아주 가끔씩 찾아와 나였던 나를 놀래켜주렴.
이미지 출처 : 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