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

[에세이] <독서의 기쁨> - 김겨울

by 지하

새로 만난 사람이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독서"라고 말한다. 취미를 얘기함에 조금 망설이는 이유는 그들의 반응 때문인데, 이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도 책을 좋아한다는 고백. 이들은 대부분 나처럼 책에 관심이 있거나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로, 책에 관련된 대화가 하나둘 오가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친밀해지기 시작한다. 나에겐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선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는 말보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선 그가 좋아하는 책을 물어라"라는 말이 더욱 믿음직스럽게 들리기 때문에 책을 통해 친해지는 이러한 관계가 무척이나 반갑다. 마치 좋아하는 영화나 가수가 겹친 것처럼 쉴세 없이 책에 대해 떠들다 보면 자연스레 생겨난 내적 친밀감 덕분에 상대방과는 이미 절친이 된 기분이다.


두 번째 반응은 "독서?"라는 다소 높은 음성의 의문. 외모로 보나, 하는 행동으로 보나 전혀 책을 좋아하지 않아 보이는 나의 취미가 독서라는 사실에 그들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인다. 이후에는 마치 내가 진짜 책을 좋아하는지 심문하려는 듯한 질문이 쏟아지는데 "제일 최근에 책을 읽은 게 언젠데?"라거나 "기억나는 책 구절 말해봐" 등 독서라는 나의 취미가 거짓임을 밝히려고 날카롭게 탐문한다. 꾸역꾸역 질문에 대답해봐도 상대방 마음속 깊이 새겨진 의심의 뿌리는 쉽게 잘리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나의 취미를 증명해야 하는 지경까지 오다니. 좋아하는 것을 쉽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도, 독서가 취미임을 밝히기 망설이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언제부터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냐면 글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을까. 매일 저녁 가족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도서관에 들려 책을 읽었다. 물론 대다수의 책들은 화려한 캐릭터와 유쾌한 그림이 함께한 만화책이었지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조지오웰의 <동물농장>등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그저 읽는 것이 좋아 세계문학 작품을 건드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열댓 살의 꼬마아이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학교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다름 아닌 도서관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서둘러 입 안으로 음식물을 채워 넣고 소화가 채 되기도 전에 교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고 하루를 알차게 살자고 다짐하기도 했고, 당시 청소년 필독서인 <완득이>를 읽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책은 똑같은 표지에 숫자만 다른 판타지 소설류였다. 가지런히 나열된 책 표지를 바라보았을 때의 그 두근거림이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 흥분감은 지금도 가끔 도서관에 일렬로 즐비한 판타지 소설을 볼 때마다 나의 대뇌신경을 자극시키기 충분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를 단번에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저 책이 좋아 자신의 책을 "이 책은 책과 함께 자라온 한 독자가 책에 보내는 러브레터다."로 소개한 "김겨울"처럼 말이다. 북튜버이자 이제는 어엿한 작가인 "김겨울"이 처음으로 쓴 책 <독서의 기쁨>에는 책에 관한 작가의 사랑이 물씬 느껴진다. 단순 책의 내용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책의 외양, 내지, 무게부터 시작해 책과 떼어놓을 수 없는 독서대, 책갈피 등의 물건에서도 그녀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 김겨울이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생의 삼할 정도는 책장을 넘기는 데 썼고, 이할 정도는 책장을 넘길 책을 살 돈을 버는데 썼으며, 나머지 오할은 막연하고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몇 권 안 되는 책을 안고 비틀거리는 데에 썼다(p.116)"고 하는 그녀의 고백이 너무나도 솔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북튜버"를 시작해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이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팟캐스트와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서도 책에 대한 사랑을 꾸준하게 고백한 것이 참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녀의 컨텐츠가 여러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되어 내심 기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사고력을 높일 수 있는 단순한 이유 외에도 첫 장을 넘겼을 때의 묘한 설렘, 새책과 헌책이 풍기는 달콤한 책 냄새,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알록달록한 표지 등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넘쳐난다. 하긴, 그렇게 책을 좋아하니까 현재 학업도 취업도 제처 두고 매일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겠지. 어지러운 세상이 나와 책을 멀게 하더라도 나의 이 열성적인 짝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러모로 보나 나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맞는 것 같다.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떨 때는 숙제처럼 느껴지지만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뒤에는 '오늘도 나는 책과 함께 하여 행복하구나'라고 느끼니 말이다. 그저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도서관에 출근하고, 그저 책이 좋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다른 무엇을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부터 모든 하루가 만들어지고, 나의 꿈과 이상이 형성되어 가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 언젠가는 현실에 치여 책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만 영원히 지닐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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