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 후 낙화

초점에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움

by 지하

4월의 시작은 곧 벚꽃의 시작. 어느 날보다 따스한 봄날을 좋아하고, 어느 꽃보다 벚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1년 중 가장 설레는 날이 다가왔다. 예정보다 빠르게 다가온 만개시기 때문에 벚꽃과 갑작스러운 만남을 가졌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올해도 아름다운 벚꽃과 눈을 맞추었다는 게 중요하지.


올해는 유난히 나의 눈에 벚꽃이 아름다워 보였는데, 아마 난생처음 부모님과 함께 벚꽃여행을 갔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 때는 공부 때문에, 그 다음 해는 군대 때문에, 다음 해는 애인, 다음은 코로나. 갖가지의 핑계와 나름의 이유로 부모님과 함께 벚꽃을 보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경험을 이제야 해본다. 하루의 농도가 짙다 못해 따스하게 굳은 날이다.


아버지는 만개한 벚꽃이 좋단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잎이 100% 차오른 그 순간이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하였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꽃잎이 떨어지는 낙화의 순간이 좋다고 했다. 꽃비라는 이름으로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긴 무수한 꽃잎들.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그 순간에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했다. 역시 같은 집안에 살아도 매번 투닥이는 성격 어디 못 간다.


만개한 벚꽃과 낙화하는 꽃잎들을 보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나는 벚꽃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 걸까? 봄이 다가오고 꽃이 피어가는 과정일까.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만개한 그 장면일까. 혹은, 짧은 순간동안 자신의 할 일을 마친 뒤 서서히 퇴장하는 그 뒷모습일까.


평소 지나다니는 흑백의 공간에 하얗게 피어나는 꽃잎을 보면 흥분을 감추기 어렵다. 마치 나의 인생에서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끝내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설렘이 가득하다. 꽃이 만개한 순간에 그 설렘은 곧 행복감으로 변한다. 100%를 만땅 채운 나의 행복 게이지는 곧 나의 365일 중 가장 행복한 하루로 기억된다. 시간이 지나 꽃잎이 점차 떨어지고 다시 앙상한 나무로 돌아갈 시기가 되면 나는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하여 대뇌에 저장한다. 행복한 순간은 다시 찾아온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약으로.


책이나 영화를 보면 분명하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순간이 있는데, 벚꽃만은 그러지 않는 것 같다. 시작하는 순간과 완성된 순간, 끝나는 순간 모두가 나에게 다른 감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나에게 벚꽃만이 유일하다. 단 1~2주일의 기간 동안 나의 마음을 이토록 뒤섞을 수 있다니. 너란 녀석, 참 요망하다.


여러분 역시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것이 있을 테다. 그 기억을 꺼내어 어느 순간에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아마 매 순간마다 같은 감정으로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은 색으로 보이는 색깔도 숫자 하나만 바귀면 다른 색으로 불리는 헥스코드처럼 행복 역시 무수한 색채로 당신에게 존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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