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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23. 2023

전염병이 만들어낸 세상

[소설] <페스트> - 알베르 카뮈


약 2년여간 우리를 괴롭혔던 전염병 "코로나"가 서서히 우리의 일상에서 지워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감염자는 발생하고 있고, 아직 완벽하게 전염병이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은 전염병이 발생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과거의 상황과 100% 일치하진 않았다.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전염병이 만들어낸 세상은 우리의 모든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기 충분했으니. 아무래도 전염병이 만들어낸 시공간은 잃어버린 2년이라고 불릴 게 아니라 변모하는 2년이라고 칭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1947년에 완성된 소설임에도 7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소름 끼쳤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소설 <페스트>에서 전염병으로 만들어진 세상과 그 세상에서 변해가는 인간상을 잔인할 만큼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 코로나 시대를 겪어보기 않았더라면 그냥 넘겼을 문장들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전염병이라는 워딩, 그리고 코로나


쥐들의 사건을 가지고 그렇게 떠들어 대던 신문이 이제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 나와 죽었지만 사람들은 방 안에서만 죽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문은 오직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p.51)


도시를 유행시키는 열병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 사람들은 이 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마치 일종의 감기, 혹은 과로로 여겼고 이는 더 큰 사상자를 만들어낸다. 이후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자체 및 당국은 이를 "전염병"으로 규정할지 고민한다. 도시 인구의 절반이 이 병에 걸렸는데 왜 정부는 전염병으로 부르기를 주저하는 것일까. 그것은 전염병이라는 워딩의 심리적 특성에 있다. 전염된다는 것은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까.


코로나가 일반적인 전염병이라면 전 세계에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간염과 말라리아, 결핵 등 수많은 전염병이 존재하지만 코로나만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물론 내가 겪은 직접적인 간염병이 코로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듯하다.) 생각건대 세상이 코로나로 인해 떠들썩해진 이유는 그 병이 "사람과 사람" 사이 전염되는 전염병이라는 것, 그리고 얼굴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쉽게 전염된다는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전염되는 전염병이다. 이 말은 즉, 사람을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람과의 소통, 공유, 모임 등이 즉시 제한된다. 대면으로 이루어졌던 사회망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하루아침에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또한, 코로나의 감염성은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더욱 증가한다. 그저 마스크 없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전염될 수 있는 특성상 우리는 이전처럼 쉽게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학교가 아닌 집에서 화상으로 수업하는 방식을 고안했고, 비말을 차단할 수 있는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는 방법으로 이를 최대한 방어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새로운 사회, 문화 그리고 세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닌.


그리고 죽은 사람이란 그 죽은 모습을 눈으로 보았을 때에만 실감이 나는 것이어서, 오랜 역사에 걸쳐서 여기저기 산재하는 일억의 시신들은 상상 속의 한 줄기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p.56)


한창 코로나가 유행했을 때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는 "숫자"였다. 우리는 모두 어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 수에 혈안이 되었으며, 모임 인원제한에 한 껏 예민한 상태였다. 숫자에만 집중하다 보니 전염병이 갖는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왜 우리가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지, 왜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보단 언제 이 사태가 끝날지에 주목하면서. 전염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보다 전염병을 정의하는 숫자에 더욱 주목하면서.


숫자는 결과를 나타내기에 아주 적합하다. 때문에 수치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코로나", 혹은 "감염자"라는 문자에 집중하기보단 "감염자 수"에 초점을 맞춰 이를 판단한다. 모든 상황을 수치화함으로써 극단적인 결과주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달되는 이 병을, 고통받는 주체와 객체는 다름 아닌 우리 사람인 이 병을, 오직 숫자만으로 바라보는 것은 복잡한 인간을 0과 1의 수치화로 표현하는 것과 다를 바 있을까? 우리 인간은 숫자로 이루어진 전광판이 아닌데 말이다.



코로나가 만든 세계


이제 전 세계인 대부분은 코로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보단 코로나에 무뎌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실외 모든 곳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었고, 길가에 돌아다니는 시민 절반 정도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얼굴을 드러낸다. 최근에는 해외여행 제한도 풀리게 되어 많은 이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해외로 떠났다. 다시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복귀한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심심치 않게 온라인으로 회의나 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오늘을 기준으로 금요일(23.4.21)엔 약 13,000여 명의 일일 확진자가 발생했다.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그 존재가 옅어졌을 뿐이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 12월의 시대로 돌아간 것이 아닌 코로나로 인해 탄생한 2023년의 4월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전염병이 만든 문화가 합쳐져 만들어진 새로운 세상에서.


과거에도 전염병은 존재했다. 페스트도, 신종인플루엔자도, 지금의 코로나도. 앞으로도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언젠가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나 우리를 또다시 괴롭힐 것이다. 역사는 대체로 반복되는 편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전염병 그 자체가 아니라 전염병으로 인해 변화되는 세상이다. <페스트>가 뛰어난 평가를 받는 이유도 전염병 "페스트"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 아닌 "페스트"로 인해 변화된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을 잘 포착하고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코로나가 만든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후에 찾아올 전염병에 대해 진정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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