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 Jun 23. 2023

작가와 작품은 분리될 수 있을까?

[지하칼럼#2] 객관적이라는 착각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책날개에 적혀있는 작가소개를 먼저 읽는다. 전시회에 가더라도 작품을 보기 전 팜플렛에 적혀있는 작가 소개란을 먼저 읽은 뒤 작품을 감상한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전 누가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먼저 알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보기 전에 작가에 대해 알아보는 게 당연한 일일까? 그렇다면 작가에 대한 소개나 연혁 역시 작품의 일부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오늘은 예술계에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은 논쟁인 "작가와 작품은 분리될 수 있는가"에 물음표를 던져 작품성에 대한 짧은 견해를 말해보고자 한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일까, 아니면 작가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까?


타인의 이야기를 담거나,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는 작품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담겨있다. 하물며 로봇이 만든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 로봇의 시스템이나 회로를 개발한 것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작품엔 인간의 견해가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작품에 작가의 의도와 견해가 가득 담겨있다면 작품을 작가의 또 다른 분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수많은 자아 중 하나가 작품으로서 세상밖에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나는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선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작품을 감상하는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를 완벽하게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똑같은 작품이더라도 누가 그렸냐에 따라 개인적인 평가가 달라지는 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작품을 바라보더라도 우리는 로봇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100%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단지 작가가 유명하기 때문에 작품이 높게 평가받거나,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작품이 낮게 평가받는 것이 왠지 비합리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색안경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동떨어져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자연스레 자신만의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다. 특히 매체에 많이 등장하는 사람일수록 우리의 색안경은 그 농도가 짙어진다. 음주운전, 학교폭력, 마약 등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낸 예술가라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예술가에게 우리는 등을 돌린다. 인간이라면 '작품성이 뛰어나면 상관없으니까'라는 생각에 범법자를 옹호하는 것이 뭔가 꺼림칙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의 평론가들은 작품을 보기 전에 작가가 누구인지 일부러 확인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 궁금증을 참아내고 작품을 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용물보다 포장지에 더 흥미를 느끼곤 하니까.


결국 작품의 평가자가 인간인 이상 작가와 작품을 완벽히 분리하여 평가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일에 가까운 일이다. 팔은 안으로 굽혀져야 자연스럽다. 바깥으로 팔을 굽히는 순간 우리의 몸은 이상함을 감지한다. 작가와 작품을 연결 짓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으로부터 저항하려고 하니 평가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 좋은 작품을 맛보기 위해선


작가와 작품 중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둘진 개인의 선택이다. 작가가 누구든 작품성이 뛰어나기만 한다면 외적인 면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작품성이 어떠하든 작가 자체에 매력을 갖고 작품을 보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어떠한 관점도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둘 중 어느 하나에 너무 치우친 경우 그 대상의 본질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와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 아닐까? 무조건적인 수용은 언제나 탈이 나는 법이니까.


서평과 칼럼 같은 글을 쓸 때는 항상 '작가는 미워하더라도 작품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며 객관적으로 작가와 작품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취미로 쓰는 에세이나 일기에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주관적인 호불호가 가득하다. 이처럼 내 마음속에서 작가와 작품이 100% 분리될 수 없더라도 작품의 온전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선 먼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작품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작품에 대한 더 좋은 평가를 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색안경을 인정하고, 도수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성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물음표로부터 - 당신에겐 작품이 먼저인가, 혹은 작가가 먼저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다크나이트는 과연 정의의 사도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