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 연우

by 지현

“야 어제 오빠들 음방 나온 거 봤냐?”

정아는 아침부터 아이돌 얘기다. 나도 끼어서 아는 척하고 싶지만 아는 게 없다. 내 취향은 어딜 가도 비주류다. 얘들이 비틀스를 알까? 퀸을 알까?

“연우야 너도 오빠들 방송 봤어?”

“응? 아니 나는 언니들 봤는데.”

연우는 여자 연예인을 좋아한다. 특히 이영지와 앰버를 좋아한다. 요즘은 스우파2에 빠져서 맨날 그 얘기다. 연우가 보여줘서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멋지긴 하다.

“너 또 스우파 봤어? 야 근데 거기 나온 언니들은 얼굴이 좀. 몸매도 별로고. 근육질 같아서... 난 좀 별로야. 울 오빠들 근육은 멋진데에~~~”

정아는 맨날 오빠들 타령이다. 요즘은 또 새로 나온 보이 그룹을 파는 것 같은데 이름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나는 집에 티브이도, 내 스마트 폰도 없다. 숙제를 위한 노트북이 하나 있는데, 그마저도 엄마 방에 있다. 엄마의 양육 철학이 그렇다. 아주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아 짜증이 나지만 고집 불통인 엄마를 이길 수가 없다. 특히 싱글맘인 엄마에 외동딸인 경우에는 더 그렇다. 나는 엄마 말에 순종하는 편이다.


“진희야, 오늘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돼?”

연우가 물었다. 연우는 유치원부터 같이 다닌 친구다. 친했다가 싸웠다가 하지만 그래도 대개는 가깝게 지내는 편이다. 중학교까지 같이 올라왔을 때는 ‘혹시 얘랑 운명인가?’하고 생각했다.

“나 오늘 학원 갔다가 엄마 가게 일 도우러 가야 돼.”

“아 그럼 나도 시간 맞춰서 아지트로 갈게.”

연우는 울 엄마를 꽤나 좋아한다. 엄마도 연우를 좋아하는데 어떨 때 보면 나보다 연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어릴 적엔 질투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아무 생각 없다. 그냥 엄마가 스마트 폰만 좀 허락해 주면 좋겠다.

“그래, 그럼.”


“아구 연우 왔구나. 연우랑 진희 손 씻고 와. 앞치마 두르고. 오늘 커피 볶는 날이야. 알바 언니가 못 온대서 진희한테 도와달라고 청했지. 와줘서 고마워 연우야~ 아줌마가 알바비는 제대로 챙겨줄게.”

엄마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커피 로스터리를 겸한 카페를 하고 있다. 이 동네에는 변변한 커피집이랄 게 없어서 그런지 제법 단골도 많고 인스타를 보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

“아줌마 저 이제 뭐 하면 돼요?”

연우는 빼는 게 없다. 중학생인 게 맞나 싶다. 우리는 북한도 무찌른다는 중2인데 연우는 참 한결같다. 나는 요즘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이다.

“우리 진희도 너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 엄마! 내가 뭘! 엄마가 도와달래서 이렇게 왔구만. 자꾸 그러면 나 갈 거야. 엄마는 딸보다 좋아하는 연우랑 잘해봐.”

아이 참. 또 버럭 했네. 이렇게 버럭하고 나면 꼭 생리하던데... 배가 싸한 게 생리를 하려나?

“진희야 미안해. 엄마가 비교하는 말해서 속상하지? 배운 대로 비교하고 평가하고 그런 거 안 하려고 그러는데 자꾸 그러네. 엄마가 다시는 안 그럴게. 우리 진희는 존중받는 게 중요할 텐데...”

엄마는 사춘기인 나랑 잘 지내보겠다고 얼마 전부터 비폭력 대화를 배우러 다니고 있는데 배워도 저 모양이다. 참 나.

“아 엄마 오글거려. 비폭력대화 말투 쓰지 마. 어색해.”

엄마의 사과에 머쓱해져서 괜히 툴툴거렸다.

“연우는 저쪽 가서 로스팅 시간 좀 재고, 진희는 이쪽에서 설거지 좀 해. 그것만 해놓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어 알써.”

“네 아줌마.”


연우는 언니만 네 명인 집에 막내다. 언니들이랑 나이차이도 많이 나서 큰 언니는 벌써 결혼해서 아이도 있다. 연우는 중학생인 주제에 벌써 이모가 되었다. 연우 엄마는 애를 그렇게까지 많이 나을 생각은 없었는데, 연우 친할머니가 아들 낳으라고, 외할머니도 아들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눈치를 줘서 딸만 다섯을 낳게 되었다고 했다.

다섯째인 연우를 임신했을 때 커다란 고양이가 골골거리면서 엄마 치마폭에 안겨있는 꿈을 꿔서 이번에는 아들이 틀림없다! 확신했다고 한다.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였던 게 아무래도...

아들을 기대하다가 낳은 딸이라 그랬는지 연우 부모님은 연우를 아들처럼 키웠다. 유치원 사진에 남아있는 연우 모습은 꼭 남자아이 같았다. 짧은 머리에 치마는 입은 적이 없었다. 같이 유치원 때 찍은 사진을 보다가 연우에게 그런 남자애 스타일이 괜찮았냐고 얼마 전에 물어봤는데 자기는 좋았다고 했다.


“야 찐.”

엄마랑 저녁을 먹고 연우네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서 연우가 불렀다. 연우는 나를 찐이라 불 렀다.

“왜 누누찡.”

“나 쫌 고민이 있다.”

“뭔데. 들어보고 고민 아니기만 해 봐라.”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

“오잉! 누군데? 누구누구? 나 아는 사람?”

“아니 너 모르는 사람.”

“헐 뭐야. 너 나 몰래 뭐 하고 다니냐. 누구냐? 어떤 남자애냐?”

“남자애 아냐.”

“뭐? 그럼 오빠야?”

“아니 오빠도 아냐.”

“오빠도 아니면 뭐야? 너 혹시 아저씨 만나냐?”

“야 아무려면 내가 그러겠냐. 너는 그렇게 나를 모르냐?”

그렇다 나는 연우를 잘 모르겠다. 내가 유치원 때부터 남자애들과 사귀었다 헤어졌다 연애놀이를 하는 동안 연우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남자애들이랑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신나게 놀고 하는데도 누굴 좋아하네 누구를 사귀네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니까 나는 너를 잘 모르겠더라고.”

“섭섭하네...”

연우가 진짜 섭섭하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다.

“야 뜸 들이지 말고 다 털어놔 봐. 이 언니가 다 들어줄게”

“음... 나 스우파 팬카페 활동하는 거는 알잖아.”

“그치 알지.”

“거기서 만나게 된 사람이야.”

“헐 대박. 나이 많아?”

“두 살 많아.”

“그럼 고등학생이잖아!”

“어.”

“야 궁금해 빨리 말해.”

“여자야. 언니.”

“.....”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럼 연우가 레즈비언? 머릿속에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다. 그동안 같이 발가벗고 목욕하고 한 침대에서 자고 그랬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니 잠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내 친구 연운데. 걔가 여자를 좋아하는 거고. 더러워.

“더러워?!”

“....”

앗 머릿속으로만 떠올린 단어가 입 밖으로 나왔다. 연우 표정이 일그러졌다. 금세 얼굴이 빨개지고 눈이 충혈 됐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나 간다.”

연우가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홱 뒤돌아 저 멀리 뛰어갔다.

씨발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거지? 아놔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눈물은 왜 나는 거지? 나도 이유를 모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진희야 무슨 일이야?”

“몰라. 얘기하고 싶지 않아.”

“왜 연우랑 싸웠어?”

나는 방문을 쾅 닫고 침대에 엎어졌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살그머니 들어왔다.

“진희야 속상한 일 있었어? 엄마가 도와줄 일 있을까?”

“몰라. 엉엉.”

나는 발버둥을 치며 엉엉 울었다.

“엄마한테 얘기하고 싶으면 얘기해. 엄마 여기 있을게.”

엄마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울음이 났다. 나는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우니 좀 진정이 됐다.

“엄마. 흑흑. 연우가 여자를 좋아한대.”

“그랬구나. 그랬는데...?”

“근데 내가 연우한테 더럽다고 그랬어. 그래서 연우가 울면서 가버렸어. 나 어떡해? 연우가 고민 있다고 나한테 들어 달랬는데.”

“우리 진희가 연우 마음 아프게 해서 후회되고 속상하구나.”

“어. 엉엉. 이제 어떡해. 연우가 나랑 절교한대면 어떡해.”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연우랑 잘 지내고 싶어?”

“그럼. 내가 연우 얼마나 좋아하는데. 엄마도 알잖아. 연우는 내 형제 같은 애야.”

“그럼 알지. 연우는 우리 식구 같지. 연우한테 말한 거 사과하고 다시 전처럼 잘 지내고 싶은 거야?”

“응 근데 안될 거 같아.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해버렸잖아.”

“진희 마음이 답답하구나. 방법을 알고 싶어?”

“근데 엄마 비폭력대화 연습하는 거야? 어색해. 그냥 하던 대로 해.”

“미안... 진희야. 그럼 연우한테 어떻게 하고 싶어?”

“내일 학교 가서 사과할까? 미안하다고 하면 될까?”

“응 학교에서 만나서 사과해. 근데 연우가 난처해 할 수도 있으니까 편지로 써도 좋겠다. 그 얘기는 너한테만 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알았어 엄마. 편지 써볼게. 근데 그 비폭력대화 연습한 거 나한테도 조금 도움이 된 것 같아. 잘 배웠네.”

“다행이다. 연습 열심히 할게.”

눈물을 닦고 연우에게 편지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 근데 마땅한 편지지가 없다. “엄마~!”

이미 방을 나간 엄마를 큰 소리로 불렀다.

“왜?”

“엄마 편지지 있어?”

“기다려봐. 갖다 줄게. 마침 귀여운 게 있지.”

엄마가 가져다준 편지지는 연우 태몽에 나올법한 커다란 고양이가 그려있었다.


연우에게.


연우야 미안해.
내가 한 말은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어. 네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너무 당황해서....


여기까지 쓰고 연필을 멈췄다. 엄마가 배운 비폭력대화 생각이 났다. 일단 연우의 마음을 알아줘야지.


연우에게.


연우야 내가 한 말로 네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너는 나를 믿고 네 고민을 나누고 싶었던 거잖아.
나한테 의지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을 텐데 내가 제대로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 마음이 아플걸 생각하니 나도 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프다.
연우야 네가 괜찮다면 나는 다시 네 얘기를 잘 들어주고 싶은데 너는 어때?
이 편지 읽고 나랑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답장해 줘. 거절해도 이해할 게. 너무 마음 아프지만 말이야. 기다릴게.

너의 불알친구 찐.


연우가 내 편지에 답을 할까? 아 연우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 고양신한테 기도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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