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날씨가 정말 왜 이런지 모르겠다. 추석도 지나고 사흘 후면 추분인데 오늘 낮 최고기온이 섭씨 33도에 이를 것이라고 하며 휴대폰에 또 폭염특보가 뜬다.
그래도 오늘 만나는 장소인 올림픽공원역에는 열여섯 명이나 친구들이 모였다. 추석 연휴 다음날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올림픽 공원이라서(평지가 많으니)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많은 수가 왔다.
올림픽공원은 우리가 전에 자주 찾던 공원이지만 요새는 서울 주변에 새로 갈 곳이 많아져서 다른 곳에서 걷느라고 오래간만에 찾게 되었다. 작년 연말 몹시 추웠던 날에 와 보고 벌써 가을이 되었으니 올해 처음 온 것 같다.
올림픽공원 들꽃마루에 요즈음 황화 코스모스가 피었다니 그곳으로 먼저 가 보기로 한다.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직진하여 양재대로를 따라 장미광장으로 간다. 장미광장에는 초여름부터 화려했던 장미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늦더위가 괴로운지 꽃들이 힘이 없고 광채를 잃었다. 우리도 내리쬐는 햇볕이 무서우니 가까이 가서 올해의 마지막 장미꽃을 들여다 봐줄 여유를 갖지 못한다.
장미원 옆으로는 위례성대로(은행나무길) 변에 나지막한 언덕이 있고 “들꽃마루” 가는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들꽃마루 앞에 서니 언덕의 경사면에 황금색 코스모스가 환하게 빛나는 넓은 꽃밭이 펼쳐진다. 예전에는 분홍색 코스모스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즈음 공원에는 노란색 황화 코스모스가 대세인 것 같다. 꽃 색깔도 유행을 타는 건가, 아니면 노란 코스모스가 일찍 피고 더 잘 자라기 때문일까? 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는 듯 들꽃마루 언덕을 넘어 반대편 경사면으로 내려가면 분홍색 코스모스 밭이 펼쳐지는데 활짝 핀 분홍 꽃송이는 아직 몇 송이 밖에 보이지 않는다.
들꽃마루를 지나면 숲길이 이어지고 한성백제박물관, 조각공원, 소마미술관 옆을 지나게 되는데 이 숲길에는 소나무도 많고 활엽수 그늘이 좋아서 우리가 여름에도 가끔 찾아오는 길이다.
나무 그늘 아래로 천천히 걸어서 올림픽공원의 정문이 되는 평화의 문이 있는 평화의 광장까지 간다. 이 광장과 몽촌토성 사이에 몽촌호라는 호수가 있는데 안내도에서 보니 성내천이 한강으로 흘러내려가다가 몽촌호에 머물렀다 가는 것 같다. 우리는 올림픽회관 앞에서 호수 위의 다리를 건너서 몽촌토성 아래쪽 호숫가를 걷는다.
1988년 올림픽공원이 처음 개장되었을 당시 이 근처에서 살았다는 한 친구가 그때는 나무도 어리고 공원이 황량했었었는데 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라서 우거졌다고 말해서 지나간 36년이라는 세월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한다.
우리가 가끔 와서 피크닉 하던 피크닉장을 지나가는데 넓은 잔디밭이 오늘 유난히 더 푸르게 보인다.
피크닉장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좀 더 돌아가니 멀리 올림픽공원의 상징 조형물도 보이고 오전에 출발했던 올림픽공원역 건물도 보인다.
우리는 지하철역 가기 전 광장 오른편에 있는 식당 불고기집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다. 아침에 와서 구두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식당에서는 따로 떨어진 공간에 우리만을 위한 좌석을 마련해 주었다.
여기서 푸짐하게 점심을 먹은 후에 찾아간 이웃 카페는 냉방시설이 너무 잘 돼 있어서 긴팔 소매의 바람막이가 필요할 정도로 추웠다. 덕분에 한 시간 이상 바깥의 더위를 잊고 딴 세상에서 보낼 수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매우 더웠으므로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조금만 걸은 것 같은데도 어쨌든 만천보 이상 걸었다. (그런 식으로 걸어서 운동이 될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일엔 비가 많이 오고 기온도 내려간다니 제발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더운 날이기를 바랄 뿐이다.
2024년 9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