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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an 04. 2025

남산 한양도성길의 단풍

서울의 허파, 서울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남산은 라니씨와 그 일행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주 찾는 산이다. 특히 벚꽃이 피는 봄과 단풍이 좋은 가을에 더 자주 찾지만 그 외에 어느 계절에 와도 아름답고 운치 있는 길로 라니씨를 맞이해 주는 고마운 산이다. 뿐만 아니라 남산은 서울의 중심에 있어 사방에서 오는 친구들이 모이기에  교통도 아주 좋다.


11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이 남산의 단풍은 언제 들까? 하고 계속 남산을 쳐다보고 지나다니며 남산이 물들기를 기다렸으나 하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붉은색 단풍이 보이기 시작했다(예년에는  11월 중순이면 단풍의 절정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반달쯤 늦은 것 같다).


작년 가을에는 비가 자주 와서 단풍 시기를 놓쳐 아쉬워했으므로 올 가을에는 남산의 단풍을 꼭 봐야지 생각하고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로 날짜를 잡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전날에 역사적이고 기록적인 11월 폭설이 내릴 줄 누가 알았겠나? 그래서 남산의 한양도성길 걷기는 일주일 뒤로 밀려 오늘에서야 실행하게 된 것이다.


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아홉 명이 모였다. 일주일 전에 내린 폭설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지만 목으로 스며드는 아침 바람이 매우 차갑다. 이틀 전 한 밤중에 폭풍같이 지나갔던 국가 비상사태의 바람까지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면서 더욱더 추위가 느껴진다. 그러나 호텔 후원 쪽의 한양도성길로 가는 계단을 얼마  오르지 않으니 곧 숨도 차고 몸도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한다.


혹시나? 단풍이 남아 있을까? 했더니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화려한 단풍이 아직 남아 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12월 단풍을 만나니 더욱 반갑고 밝은 햇빛을 투과하는 단풍잎 색깔이 더욱 고와 보인다. 일주일 전에 왔었더라면 절정기의 단풍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도 약간 있지만 쨍하게 높고 파란 하늘이 올해의 마지막 단풍을 빛내주고 있어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신라호텔의 조각공원과 성곽 사이의 이 길은 언제부터인가 다산성곽길이라고 불리는데 가을에 특히 더 아름다운 길이다. 아직 사람들이 잘 몰라서 호젓하기도 하고. 이 성곽길을 계속  더 가서 반얀트리 호텔 옆으로 서쪽으로 돌면 남산 정상과 서울타워가 보이고 이 데크길에서 남쪽으로는 저 멀리 관악산도 보이는데 오늘은 공기가 좋아서인지 관악산의 능선이 유난히 뚜렷하게 보인다.

반얀트리 호텔의 정문을 나와 큰길을 건너 국립극장 뒤편으로 가서 남산 북측순환로의 산책길에 들어선다. 이 순환산책길은 벚나무길로 유명한데 벚나무잎은 이미 떨어져 가지들은 앙상하지만 길옆에 쌓인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며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날씨가 좋으니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것 같다. 등산복 차림의 단체 관광객도 많고.

북측순환로 도중에서 아래로 서울시공원여가센터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이 센터 건물 앞을 지나면 남산골 한옥마을을 통과하는 길이 연결된다. 한옥마을은 충무로역에서 가까우므로 충무로역에서 출발하여 오늘 우리가 걸어온 길을 반대로 걸을 수도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여러 번 다녀갔으므로 오늘은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점심을 먹으려고 대한극장 옆 골목에 있는 굴밥집을 찾아 가는데 추억의 영화관이었던 대한극장이 이제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니 섭섭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 극장에서 처음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벤허”를 보았는데, 하며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간다.


겨울철 쌀쌀한 날씨에 제격인 따끈한 굴솥밥을 한솥? 씩 먹고 골목 밖으로 나가서 큰길에 있는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마침 2층에 아홉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비어 있어 우리가 독차지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단풍을 보며 만천 보 넘게 걸었다.


2024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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