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4월의 산책코스
토요일 아침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매봉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아니 벌써? 올해 봄꽃의 개화기가 빨라졌다더니 실감이 된다. 아직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벚꽃길을 걸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의 벚꽃은 일제히 한꺼번에 피어서 아주 짧은 기간만 활짝 핀 모습을 보여주고 져버리기 때문에 때를 잘못 맞추면 한해의 벚꽃놀이가 허탕이 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다음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 비가 온다니 그 비에 벚꽃은 다 떨어져서 그다음 날 친구들과 함께 모여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오늘은 미세먼지 상태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토요일이라서 사람도 많을 테지만 벚꽃의 유혹은 강하다. 오늘 아니면 활짝 핀 벚꽃을 올해에 못 볼 것 같다. 혼자라도 나서기로 한다. 어디로 가지?
사실 퇴직 후에 이제까지 해마다 서울의 벚꽃 명소라고 이름난 곳은 대체로 다 다녀 보았다. 여의도 윤중로, 양재천, 남산, 안산 등등. 그런데 여태 가보지 못했는데 걸어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하남의 숨은 벚꽃 명소라고 알려진 덕풍천이다. 덕풍천은 작년여름 당정뜰에 가느라고 지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벚나무길을 걸으며 올봄에 꽃 필 때 함께 걷는 친구들하고 꼭 한번 와 보리라고 꼽아두고 있었던 곳이다.
하남? 정말 멀리 여겨지는 지명이지만 요즘은 지하철 5호선이 하남검단산역까지 연장되어 쉽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탄 후 잠시 후회했다. 토요일 오후에 지하철은 완전히 만석이어서 앉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서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벚꽃을 감상하려면 내 아파트 앞 매봉산에서나 걸을 것이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종점인 하남검단산역까지 갔고 그곳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 직진하여 가니 덕풍천 팻말이 보인다. 지난여름 당정뜰에 갈 때는 반대편 3번 출구에서 나와 산곡천쪽으로 갔다.
덕풍천은 남한산성 아래에서 발원하여 하남시를 통과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내가 처음 만난 다리는 덕풍 3교이다. 여기서부터 한강을 향하여 하천을 따라 양쪽 둑길에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지금 벚꽃이 모두 활짝 피어 눈부신 꽃터널을 이루고 있다. 역시 사람이 많다. 그래도 어른아이 없이 이 꽃터널을 지나며 황홀한 순간 놓칠세라 열심히 사진도 찍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여기서부터 둑길이 계속되어 벚꽃길은 당정뜰까지 이어진다. 둑길 양옆에 보이던 고층아파트 무리들도 차츰 사라지고 한강 쪽으로 앞이 환히 트이며 검단산도 보여 전망이 좋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망 좋은 벤치에 앉아 잠시 경치 감상을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맞은편 미사리 쪽에서는 지금 벚꽃축제가 한창 무르익어 확성기를 통해 노랫소리가 크게 들린다. 왼편으로는 지난여름에 걸어보았던 메타세쿼이아 길이 보이는데 아직은 나뭇잎의 푸른빛이 보이지 않는다.
덕풍 3교에서 당정뜰까지 천천히 걸어서 왕복 1시간 반쯤 걸린 것 같다. 돌아올 때는 스타필드 앞에서 올림픽대로를 경유해서 잠실역까지 가는 직행좌석버스가 있어 그 버스를 타고 잠실역으로 가서 그다음 지하철로 환승하여 집으로 왔다. 토요일 오후라서 사람이 많아서 오고 가는 길이 복잡하고 시간도 꽤 걸렸지만 그래도 오늘 벚꽃 유혹에 넘어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