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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y 11. 2023

느릿느릿 살아내며 활동하는 사람 (2)

대학원에 진학할 때 지원서에 페미니즘 교육 프로그램을 잘 만들고 싶다고 적었다. 면접을 보셨던 스승님들은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신 듯했지만 합격했다.


문화연구자가 훈련하고,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스스로의 위치를 점검하고 성찰할 줄 아는 것이다. 이를 훈련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2009년에는 아주 버리고 싶었던 나의 ‘페미니스트 가수’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내 활동의 역사와 그 활동이 가능했던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과 맥락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오롯이 나-지현으로 서있고, 생존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여성운동사와 함께 했던 것이다. (대단/감동/눈물...)


나는 기운을 내 ‘한국여성주의문화운동(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의 오래된 소논문 중에 있다. 찾아봐야겠다. 그러면서 박사 논문은 ‘여성’과 ‘뮤지션’ 그리고 ‘여성주의 문화운동’으로 엮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학기부터 마지막학기까지 꾸준히 이어간 연구 주제였다.


그러나, 박사논문 프로포절을 쓰려니 막혔다. 나의 위치도 알겠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할지도 알겠는데, 질문이 없었다. 논문을 쓰려면, 연구를 하려면 질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그래서 논문은 잠정적으로 접었다.


박사과정은 그렇게 수료도 아닌 상태(프로포절을 쓰지 못해 논문자격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으니 엄밀히 말하면 수료가 아니다. 그래서 쓰게 된 표현-박사수학)로 최종학력 석사(그것도 영화음악의 젠더분석 석사)로 있는 상태다.

자살충동까지 동반했던 나의 피나는 코스웍은 그렇게 무의미하게(물론 나에게는 아니지만, 명함을 내밀 수 없다는 의미에서...), 초라하게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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