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롭다 표현하기 민망한 좀 더 자신에게 가혹한 표현을 빌자면 나른하다 못해 게으르고 무뎌진 주말의 시간이었다. 그 주말의 아침과 점심의 귀한 시간 동안 나는 어느새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생각에 뇌가 푹 절여진 채 생각의 굴레로 깊게 깊게 들어가고 있었다. 미래라는 게 원래 다가오지 않은 일이기에 알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걸 그렇게 내 생각과 뜻대로 움직이고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향 인양 여기게 되는 것 같다. 빨리, 하루속히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뭔가 불안하고 큰일이 난 거만 같은 기분 말이다.
생각이란 게 이렇듯 저 검고 깊숙하고 왠지 습할 것 같은 무한의 심연으로 우리를 자주 이끌고 간다. 그렇기에 바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게 하는 생각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나 눈과 귀를 쉴 새 없이 현혹시키게 만드는 볼 것들이 즐비해 생각이란 것조차 못하게 만드는 요즘 같은 시대에선 특히 나다.
아는 형과의 카톡을 통해 산을 다녀왔다는 그의 얘기. 산속에서 생각해보니 어떻더라는 그의 말에 나도 무언가에 홀린 듯 생각의 반전을 이루게 된다. 집의 뒤편에 있는 작은 산을 어서 다녀와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가벼운 회색 운동복에 나이키 운동화, 검은색 바람막이를 입은 채 집을 홀연히 나와 묵묵히 산으로 향한다. 등산 전 이온음료를 사 손에 꽉 쥔 채로 말이다.
수리산역과 마주하는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계단. 등산로로 향하는 몇 개 안 되는 작은 계단을 올라서는 것만으로 화면의 배경색은 급히 전환되며 종국에 나를 품어줄 갈색의 세상으로 딸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영화 속 장롱문을 열면 공간이 전환되는 거와 같은 마법 같은 계단이랄까.
운동을 생활화하지 않은 비루한 허벅지와 어느새 미세먼지를 먹는 게 디폴트가 돼버려 신선한 공기가 낯설 수도 있는 폐, 그 좋은 공기도 바로 마실 수 없게 가로막아버린 하얀 마스크를 한 채 푹신한 흙 길을 나 홀로 걸어간다. 조용히 걸어간다. 새가 날아들고. 나뭇잎을 밟는다. 벚꽃잎이 지고. 내 발 앞에 떨어진다. 흩날린다.
살아있음. 오롯이 살아있는 것들에 둘려 쌓이니 생각 속 허상의 공간이 아니라, 나는 어느새 현존하는, 살아있는 지금에 있더라. 그렇게 지금의 새소리를 듣고, 지금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살아 숨 쉬는 내 존재를 자각하고.
그러고 보니 내 눈에도 꽃이 보이더라. 분홍색 철쭉과 벚꽃잎을 보아하니 어느새 봄이었구나 번뜩 깨닫는다.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잃은 채 현실의 삶에 매일 때 이렇게 계절의 변화를 놓치나 보다. 이제라도 방향을 틀어 지금의 공간으로 나를 밀어 넣으려 한다. 현재의 아름다움과 실존의 생동감을 삶 속에 가득 채워 꽃망울이 자연스레 열릴 수 있도록..
(직접 찍은 꽃 사진이니 감사하셔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