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

by 크릉

갑작스레 휴대폰에 울린 카톡 하나. 발신인은 삼성생명이다. 평소 같으면 무심코 흘렸을 보험 관련 카톡이겠거니 했을 텐데 눌러보니 내용이 좀 다르다. 카톡은 장문의 글과 함께 첫 문장을 이렇게 안내하고 있다.


미수령 만기보험금 안내


평소에 받았던 광고나 내 보험 얘기가 아닌 것이다. 혹시 몰라 나도 모르는 보험 내역이 있나 삼성생명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 내역을 확인해본다. 역시나, 없다. 내가 모르는 게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다시 카톡을 자세히 읽어보기로 한다.


보험명은 뉴 어린이 닥터이고 만기일자는 올해 2월 19일이란다. 참 오묘하다. 어린이 닥터 보험이라니.


그래도 만기보험금이 있다는 말과 환급을 해준다는 안내 문구가 내 이름으로 왔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한편에선 잘못 안내되었다면 이 또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콜센터 번호를 누르게 된다.


몇 번의 숫자를 누른 후 연결된 수화기 너머의 상담원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오묘한 느낌을 준다.


안녕하세요. 미수령함 만기보험금이 있다는 카톡을 받아서요.

아, 그러세요. 고객님. 본인 확인을 위해.


통상의 본인 확인을 위한 절차를 마치고 의문의 카톡에 대한 궁금증에 조금 더 다가간다. 상담원과 통화 중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나를 관통하고 지나간다. 어머니. 피보험자가 나라는 말에 혹시 보험가입자가 ㅇㅇㅇ이냐고 물어본다. 맞다. 어머니가 20년도 더 된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해 예전에 들었던 보험이었던 것이다.


보험자님께서는...? 돌아가셨어요.라는 말에 상담원의 목소리가 순간 차분해지며 짧은 탄식과 함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일처리에 신경을 쓰는 듯한 인상을 주며 환급 절차에 힘을 쓴다. 몇 가지 추가 정보에 대한 질문이 오가고 한 때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그리고 어머니를 떠나보낸 예전의 동네 주소와 아파트 동, 호수를 억지로 쥐어짜 낸다.


세금 공제 후 내 통장에 들어온 4,030,086원.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5년 즈음돼가나, 자세히 헤아리기도 어쩔 땐 버겁다. 아무튼 그 어린 나이에 무슨 보험이 필요할까 싶은데 그럼에도 대비해 들어놨을 생각을 하니 가슴 한켠이 멍하다. 다 있는데 텅 빈 느낌이랄까. 먹먹하다. 십수 년 전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 같다고 해야 하나. 업무 중 옆의 그 누구에게도 들리는 것이 싫어 복도에 나와 통화하던 나는 자리로 돌아온 후 털썩 앉아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배우자를 잠시 먼저 떠나보낸 나의 아버지와 짧은 카톡을 주고받는다. 환급금을 전부 드리겠는 말에 아버지는 아래와 같이 말하신다.


잠깐이라도 엄마 생각하고 꼭 필요한 데 써라.

많은 액수는 아니어도 엄마가 아들에게 준 선물로 생각하고 꼭 필요한 데 써라.


꼭 필요한 데 쓰라며 두 번이나 당부하신다.

어버이날 이틀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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