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이팔청춘인데

by 크릉



내겐 귀여운 조카 두 명이 있다. 그중 막내는 여자아이로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둘이 있을 때는 삼촌에 대한 애정 보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말마다 주기적으로 할아버지 집에 놀러 와 자고 가던 일상 가운데 둘째 녀석이 삼촌 손을 이끌고 안방으로 이끌고 간다. 허리 높이에도 오지 않는 키를 가진 작디작은 아이의 손의 힘에 질질 끌러 가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끌려간 나에게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이..



"삼촌, 옆 돌기 해봐"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 아버지의 공간인 안방은 잠만 자는 곳으로 사시사철 푹신한 이불이 깔려 있다. 그곳으로 나를 이끌고 가 한다는 말이 삼촌, 옆 돌기 해봐 인 것이다. 어린것이 이제 학교 갈 나이가 돼서 그런지 어디 가서 누가 몸 쓰는 법을 본 거 같다. 학교 체육시간에 배운 것일까. 1학년 체육시간에 옆돌기가 있었던가. 아무튼 혼란스럽다. 예전 같으면 한 손으로 전성기 여홍철 선수 뺨 때리듯 360도를 휙휙 돌 수 있었을 텐데 순간 몸이 바짝 긴장이 되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시범을 보인다며 쪼그마하 아이는 완벽하지 않지만 제 딴에 최선의 모양으로 손 짚고 옆돌기를 선보인다. 다리가 쫙 펴진 채 완벽하게 몸을 일자로 세워 도는 것이 정석 이것만 이제 8살이 된 아이의 근력 수준은 내 기대치를 만족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할 차례이다. 조카의 빨리 하라는 재촉에 나는 옆 돌기 하는 시늉을 하며 옆돌기를 선보였지만 어딘가 잘못된 거 같은 느낌이다.


오래된 좌식생활로 엉망이 된 나의 허리는 굽혀지고 뻣뻣해 유연성이라곤 없어진 다리는 일자로 뻗지도 못한 채 'ㄱ'자를 그린채 둔탁한 모습으로 옆돌기를 한 것이다. 허허. 참. 내 모습을 내 눈으로 못 본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다. 힘을 주면 툭하고 부러지는 막대기 같이 변해버린 내 몸에 대해 생각하고 추스를 여유도 없이 이제 앞 구르기를 해보란다.



" 삼촌, 앞 구르기도 해봐"



아이의 재촉에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이불에 두 손을 대고 '휘익' 앞 구르기를 시도하는데 쿵하고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허리부터 착지를 하는 것이다. 본디 앞 구르기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보호한 후 등의 곡선을 따라 순차적으로 땅에 닿으며 회전하고 그 힘에 맞춰 발로 땅을 짚으면 되는 것인데. 소싯적 바람 소리를 내면 앞 구르기를 하고 멋진 착지를 이뤘던 십 대의 나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올해 70세가 되신 아버지가 자조 섞인 말투로 한스럽게 말씀하시는 말이 자주 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늙었나. 내가 벌써 70이라니." 옆 돌기와 앞 구르기 한 번에 신체적으로 무뎌지고 굳어버린 삼십 대의 비루한 몸 떵이를 체감하고서야 아버지의 그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들이 힘을 써가며 하거나 혹은 마음은 하고 싶은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무리해서 한다는 생각이 들면 백이면 백 어딘가 몸이 부담을 느끼고 무리가 가며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옆 돌기 한 번에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고 시간의 허무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더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고맙다. 나의 조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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