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속의 시대

by 크릉


빨리빨리에 가장 어울리는 민족이 한민족이던가.

일을 추구하는 과정의 안전성과 완벽함의 정도는 눈 감아주는 대신

빠름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성과를 내세우며 치적을 대외에 과시하고 사후 문제에는 나몰라라 하는 그런 문화.

그것이 깊게 새겨져 지우려야 지워지지 않는 문신과 같이 사회 깊숙이 뿌리내려 그런 부작용의 피해와 상흔은 고스란히 힘이 없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


어쩌다 위의 생각을 유튜브를 배속으로 보면서 했는지 모르겠다.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나도 모르게 설정 창으로 가서 배속을 1.25배 많게는 2배로까지 올려서 휙 하고 듣고 넘겨버린다.

필시 듣다 보면 시청시간을 늘리기 위해 의미 없는 미사여구를 가득 담은 시청 구간이 반드시 있긴 하다.

그 시간을 빠르게 넘기고 내가 원하는 정보만을 쏙 빼먹기 위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배속 설정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설정된 빠른 말소리가 내 귀를 통해 그리고 머릿속 시신경을 통해 흘러들어와 스쳐 지나간다.

순간의 이해와 시간 낭비를 줄었다는 생각에 바쁜 현대 사회 속 남들보다 같은 시간을 참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 하며 자위한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멍청해진 거 같다.

듣긴 했는데 이해는 안 되는 것이다. 배우기는 했는데 남지가 않는 것이다.

결과를 지향하며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남들보다 더 앞서기 위해 했던 효율적이라고 믿었던 배속 설정은 오히려 삶의 조급함과 일상의 평화로움을 앗아간 느낌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빠르게 받아들이기 위해 사용된 내 신경들은 쉼이란 것도 없이 지속적인 소비로 지쳐감을 느낀다. 그리고 본디 원했던 결과와 다르게 멍청함을 느끼는 것이다.

순리대로 사는 삶, 1배의 속도로 정도의 길을 걷는 것. 그 순간의 집중과 몰입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쉼을 주는 삶과 태도가 내게 분명 필요해 보인다.


나는 아날로그가 좋다.

과정을 중요시하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람다운 삶과 냄새가 그립다.

결과만을 지향하는 배속의 삶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도 안타까이 없어지고 공들여 쌓은 아파트의 외벽도 무너져 그 안의 앙상한 뼈 대가 노출된 건 아닐까.

지금부터 빠른 길이 아닌 바른 길로 삶을 살아봐야겠다.

배속이 아닌 정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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