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월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김선영) 필사 문장 25

by 따뜻


“시는 물과 같아.

지구가 물을 품고 있지 않다면

숲이 존재할 수도 없고

땅이 단단하게 굳어 있을 수도 없고

바다를 유지할 수도 없겠지.

네가 시를 품고 있다면

네 몸 안에 푸른 행성 하나가 들어 있는 거지.

그 행성이 하나의 물방울일 수도 있고,

한 줄의 시일 수도 있고.”


- 림태주, 『그리움의 문장들』, p.171



“시는 고형물이 아니라 액상이지.

지구에 물이 스며들어 있지 않다면

땅이 단단하게 굳어 있을 수도,

식물을 키워낼 수도, 노루를 뛰어다니게 할 수도 없어.

네가 시를 좋아한다면

네 몸 안에 백석이, 윤동주가, 소월이

흐르고 있는 것이지.

네 몸의 뼈와 살도 결국은

선조의 물방울 하나가 빚어낸 작품이잖아.”


(『이 미친 그리움』, p.31-초판본)






오세영 시인의 2월이란 시를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마당의 매화의 꽃망울의 시작을

놓치고 지나칠 때가 많았다.

이 시는 내가 잠깐 멈춰 서서

매화를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벌써, 후딱 지나가버리는 2월의 끝자락 즈음

나도 시가 내 몸속에 흐르게 두고 싶다.



2월 /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 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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