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상한 건가?
밸런타인데이에 다들 초콜릿을 만들어보셨나요?
아마 집에서 초콜릿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했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나요?
슈퍼마켓에 파는 얇은 판 초콜릿을 사서 녹여서 다시 틀에 넣고 굳혀봤거나 생크림 끓여서 넣고 생초콜릿을 만들어봤거나 조금 더 진지하게 해보고 싶어서 베이킹 재료 상가에 가서 파는 블록 초콜릿을 사서 만들어봤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발로나 초콜릿이나 카카오 바리, 깔리바우트 제품을 사서 썼다면 훨씬 좋습니다.
그런데 초콜릿을 만들어서 몰드에 굳히는데 잘 굳지도 않고, 부스러지거나 흰 줄기 같은 무늬가 생긴 적 있나요? 그렇다면 우선 칭찬해 드립니다. 카카오 버터가 함유된 제대로 된 초콜릿을 사용하셨다는 것이니까요.
초콜릿을 살 때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또 왜 가끔 초콜릿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생겨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초콜릿은 단순히 '단거'라는 인식이 아직도 만연한데, 막연히 단거라고만 인식하기에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과일도 당도가 높지만 과일을 떠올리면서 '단거'라고 먼저 잘 떠올리지는 않듯이 말이다.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초콜릿을 사려고 하면 사실 적절한 초콜릿을 찾기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산업혁명 이후 뭐든지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과자공장장들은 초콜릿을 대량생산해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사실 카카오는 대량생산에 적합한 식물이 아니며, 카카오 버터는 존재하는 식품용 유지 중 가장 비싼 재료인데 대량으로 마구 사용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캐비어가 마트 진열장에 케첩처럼 주르륵 깔려있고 가격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라면, 그게 정말 100% 캐비어라고 믿고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먹을 때도 진짜 캐비어를 먹는다는 생각이 들까? 그냥 캐비어 맛이 나는 형태의 제품이라고 생각이 들 것 같다. 초콜릿도 마찬가지다. 초콜릿 맛을 입힌, 초콜릿 맛을 내는 과자/사탕이 주르륵 진열되어 있는 것이다.
카카오 버터는 비싸니까 대량생산으로 싸게 팔 수가 없어서 제조업자들은 카카오 버터 대신 그 비슷한 역할을 사게 해주는 식물성 유지, 팜오일을 사용한다. 팜오일은 저렴하지만 몸에 좋은 유지는 아니다. 대부분의 유탕처리 과자가 몸에 나쁜 이유도 이 저렴한 팜오일에 과자를 튀기기 때문이다.
초콜릿을 고를 때 포장지 뒷면의 재료명을 읽어봐야 한다. 가장 많이 사용된 재료가 제일 앞에 쓰여있다. 대부분의 초콜릿은 '설탕'으로 시작할 것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초콜릿은 '카카오'와 '설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카카오 함량이 70%인 초콜릿은 설탕 함량이 30%인 것이다. 물론 바닐라, 레시틴 등의 다른 성분이 추가되기 때문에 완벽한 수치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부분을 확대해석하는 편향이 있기 때문에 '카카오 70%인 초콜릿'은 좋은 것, '설탕 30%'인 초콜릿은 '헉! 설탕이 30%나 들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카카오는 슈퍼식품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을 아마 건강 관련 칼럼에서 자주 보았을 것이다. 카카오는 엄청난 천연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으며 여러 미네랄을 포함한다. 다크 초콜릿을 꾸준히 먹으면 전반적인 신진대사율도 높아진다고 한다.
제대로 된 '초콜릿'이라면 제품 포장지에 '초콜릿'이라고 표기되어 있지 '초콜릿 가공품'이라고 쓰여있지 않다. 그리고 재료명은 간단히 '카카오 버터, 카카오 매스, 설탕, 바닐라(바닐린), 레시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 다른 식물성 유지가 포함되지 않고 오직 '카카오 버터'만이 지방 부분을 차지한다. 참고로 카카오 버터는 혈액 온도에서 완벽히 녹는 지방으로 혈관에 응고되지 않는다.
다크 초콜릿 구성: 카카오 버터, 카카오 매스, 설탕, 바닐라, 레시틴
밀크 초콜릿 구성: 카카오 버터, 카카오 매스, 설탕, 전지분유, 바닐라, 레시틴
화이트 초콜릿 구성: 카카오 버터, 설탕, 전지분유, 바닐라, 레시틴
위에 나열한 재료는 함량순이 아니라 단지 초콜릿이 가져야 하는 재료들일뿐이다. 레시틴은 유화제로서 아주 소량이 포함되는데 몇몇 빈투바 초콜릿 등 레시틴을 포함하지 않는 초콜릿도 있다.
그러니 좋은 초콜릿을 고르도록 하자. 초콜릿은 몸에 나쁘다는 인식이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초콜릿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설탕과 식물성 유지를 섞은 초콜릿 맛과 형태를 흉내 낸 과자들을 초콜릿이라고 인식해 버려 초콜릿은 몸에 안 좋지만 맛있고 달고 조금만 먹어야 한다는 그런 인식이 많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진짜 초콜릿은 좋은 식품이니까.
개인적으로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찾을 수 있는 초콜릿 중에서는 '린트 Lindt' 사의 판초콜릿이 괜찮은 것 같다. 다른 첨가물 없이 카카오와 설탕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왜 비싸지 않냐고 물으면 그것은 카카오의 품질. 마치 커피에 많은 품종이 있고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품질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듯이.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린트의 동그랗게 나온 형태인 린도르 Lindor는 제외. 근데 그건 간식으로 먹기 좋아서 나도 먹기는 하지만 당이 필요할 때의 간식일 뿐이다.
하지만 당연히 더욱 추천하는 초콜릿들은 커버춰 초콜릿이다.
'커버춰 coverture'는 'cover'할 수 있다는 뜻으로 유동성이 좋아서 초콜릿 필링 코팅이나 디핑 등의 작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커버춰 초콜릿은 기본적으로 카카오 버터의 함량이 높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초콜릿들로는 '발로나 Valrhona', '깔리바우트 Callebaut', '카카오 바리 Cacao Barry', '펠클린'Felchlin', '바이스 Weiss' 등이 있다. (벨리셰Veliche, 벨코라드 Belcolade 등도 있지만 사용해보지 않았다.)
커버춰 초콜릿은 큰 회사에서 전문가용으로 출시하는 초콜릿이다. 하지만 베이킹 재료 웹사이트나 온/오프라인에서 소매용으로도 구매가 가능하며 커버춰 상태 그대로 섭취도 가능하기 때문에 초콜릿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커버춰를 구매해 소분해서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카카오 버터는 온도에 민감한데 카카오 버터 속에는 각기 다른 결정체들이 존재한다. 이 결정체들은 녹는점이 다르고 크기와 모양, 결합 정도도 다르다. 초콜릿을 '템퍼링'한다는 말을 들어보았다면 바로 이 결정체들을 녹이고 굳히고 하는 작업을 통해 원하는 결정체만 남기는 것을 뜻한다. 카카오 버터 속의 결정체들 중에는 불안정한 결정체들이 존재하는데 완성된 초콜릿이 불안정한 결정체를 많이 지니고 있으면 그 결정체들이 굳으면서 각기 다른 형태와 모습을 보여주어 초콜릿에 하얀 줄무늬가 생긴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카카오 버터 속의 결정체들 때문에 생기는 현상을 '팻 블룸 fat bloom'이라고 한다.
템퍼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런 현상이 생기기도 하고, 템퍼링을 한 초콜릿이 온도 변화를 심하게 겪어도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초콜릿을 보관 중 온도가 많이 왔다갔다해도 팻 블룸이 생길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
또 다른 예로, 이렇게 하얗고 동그란 자국들이 나있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초콜릿 속의 설탕이 수분과 만나 녹아나와버린 '슈가 블룸 sugar bloom'이다. 슈가 블룸은 초콜릿 표면에 물 등의 수분이 닿거나, 습도가 놓은 곳에 초콜릿이 보관되었거나, 보관 중 온도 차이가 많이 나서(예: 냉장고에 보관 후 따뜻한 실온으로 꺼낼 경우) 이슬점에 도달해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 경우 등에 발생할 수 있다. 보기에는 정말 곰팡이가 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곰팡이는 아니고 물이 닿거나 들어가서 그런 것이니 먹어도 해롭지는 않다. 시각적으로는 좀 해로운 것 같다.
팻 블룸이 생긴 초콜릿은 다시 녹여서 템퍼링을 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슈가 블룸이 생긴 초콜릿은 이미 설탕이 물과 결합해 결정체가 생겨버려서 다시 사용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원래 수분을 사용하는 레시피에 활용하면 된다. 초콜릿 케이크나 핫/아이스 초콜릿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한 경우든 블룸이 생겨버린 초콜릿은 그대로 섭취하기를 권장하지 않는다. 우선 식감이 매우 좋지 않고, 블룸이 생긴 카카오 버터 결정체는 혀에 닿았을 때 바로 녹지 않아서 꺼끌거리며 초콜릿의 맛이 제대로 피어나오지 못한다. 상품성이 매우 떨어지며 미관상 좋지도 않다. (사실 난 팻 블룸이 오른쪽 사진처럼 생긴 경우는 바라보기 좋아한다. 나뭇결 같고 예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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