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무연고자 사망 처리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사망 시 장례비용을 국가에서 일부 보조하기에 보통은 유족들이 주민센터를 찾아와 신청한다. ‘사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처음엔 괜히 오싹했지만, 서류로만 다루다 보면 어느새 감정이 무뎌진다.
나, 그날은 조금 달랐다.
유족이 아닌 장례식장 직원이 찾아왔다. 무연고자의 장례를 치렀다며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평소처럼 무심히 서류를 넘기던 나는, 서류 한 장에서 손이 멈췄다. 서류 속에는 뜻밖에도 관 속에 누워 있는 고인의 사진이 있었다.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사진 속 초점 잃은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섬뜩했다.
그날, 하루종일 속이 메스꺼웠다. 며칠 동안은 그 눈동자가 자꾸 떠올랐다. 마치 시장에서 죽은 생선의 눈알처럼 허공만을 바라보던 눈동자였다.
‘저 사람의 마지막은 어땠을까.’
‘자신이 죽고 나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걸 알았을 때, 과연 외로웠을까.’
이 이야기를 10년 차 주무관님께 말씀드리자, “그런 일 앞으로 자주 있을 거야” 하셨다.
본인도 복지플래너 시절, 연락이 끊긴 집을 찾아갔다가 고독사 현장을 직접 보고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셨다고 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지금까지 내가 실제로 본 시신은 할아버지의 입관식이 전부인데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까지 마주해야 하는구나.'
진짜 극한 직업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동시에 서류를 처리하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죽었을 때, 그 마지막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의 죽음은 조문객 한 명 없는 고독이 아니다. 먼저, 경찰은 사망자의 연고자를 찾고 장례업체에 시신을 인계한다. 연고자가 없다면 장례업체 직원들이 상주 대신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그 과정의 행정처리는 사회복지 공무원이 담당한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마주한다는 건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긴 한 사람의 인생을, 그 사람의 마지막을 조금이나마 조력할 수 있는 사회복지공무원이라는 사실에 조용한 자부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