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자격증을 따기위해 실습을 할 때 교수님이 말하셨다.
사회복지사는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올바른 정보를 주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 말을 신념처럼 품고 사회복지공무원으로 민원 업무를 시작했다. 복지 제도, 자격 기준, 신청 절차…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며 ‘이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때의 나는 ‘정확한 정보 전달’이 곧 ‘좋은 사회복지’라 믿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의문점이 든다. 과연 많은 정보를 주는것이 정답일까.
현장은 내 믿음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복지제도를 잘 몰랐다. 용어를 설명해도, 서류를 보여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치매로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기억이 흐릿한 분, 노화로 인한 청력손실로 자꾸 뭐라고?만 외치는 분, 심지어 서류를 작성하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니 대신 작성해달라는 분도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많은 정보를 주려 애썼다. 설명은 점점 길어지고 내 목소리는 커지고 답답함이 묻어나왔다.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냥 알아서 해줘요.” 혹은 “그런 말 말고 내가 돈을 받을수 있는지 아닌지만 알려주세요.”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리 정답을 말해도, 마음에 닿지 않으면 그것은 공허한 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그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민원대에 왔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최근에 신작을 낸 손원평 작가의 『젊음의 나라』의 책을 보다가 내 고민을 담은 듯한 문장을 발견했다.
“내 상담 업무는 노인들의 신세 한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정말 깊이 고민해서 상담해야 하는지, 적당히 공감해주는 척하는 게 나은지 헷갈릴 지경이다.”
민원창구에 앉아 하루에도 수십 명의 신세한탄을 듣는 자리에서 이 문장을 읽었을때, 마치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상담은 해결을 해주는 일일까. 그저 공감하는 일일까.
언젠가부터 내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겉으로는 이전보다 밝아졌지만 속으로는 알고있다. 지금의 나는 진짜 고민하는 것이 아닌 ‘공감하는 척’이라는 것을 말이다. 적당히 공감하는 척하고 보내는 것이 내 마음이 덜 지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일인가. 내가 모든 사람의 사정을 다 끌어안을 순 없고, 모든 사연에 눈물 흘릴 수도 없다. 가끔은 ‘적당히 공감하는 척’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된다.
공무원은 서류 한 장 너머로 누군가의 인생을 비쳐보는 직업이다. 적당히 공감하는 척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면,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순간은 누군가를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의 하루에 조금 덜 차가운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