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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현 Dec 04. 2019

‘오르막길’이 축가로 안 느껴지는 이유


일요일마다 웨딩홀 방송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결혼식은 개인에게 매우 특별한 일이지만, 매주 여러 팀의 식을 보고 있자니 대부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특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가끔 기본 틀을 벗어나 색다른 음악 선곡과 구성으로 자신의 식을 조금 더 화려하게 연출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며칠 전에 했던 웨딩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웨딩들보다 훨씬 화려해서가 아니라, 축가의 선곡 때문이었다. 이 팀의 선곡은 ‘오르막길’이었다. 가사를 들어보면 축가로써 손색없는 노래다. 하지만 나에게 ‘오르막길’은 너무나 슬픈 노래다.


내가 미국에서 인턴을 했을 시절, 한국에서 사귀던 남자 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 그 친구의 외모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였을까? 너무나 비슷한 성향 때문이었을까? 미국에서 그와 헤어진 이후에도 계속 그를 그리워했다. 그와 헤어지고 9개월 뒤 한국에 돌아왔다. 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동시에 겁이 났기에, 한국에 와서도 몇 달을 고민하다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다시 잘해 볼 마음보다는 내가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상대였기에 보고 싶었다. 그와 만나 서로의 근황을 묻고 몇 번의 데이트를 하다가, 그의 고백에 사귀었지만 얼마 못 만나고 헤어졌다. 그 후 계속 친구로 지냈다. 사실 미련이 있었다. 미련이 없었으면 우리는 절대 친구가 될 리 없었다. 그는 욕심이었고, 나는 미련이었다.


우리가 다시 사귀고 헤어진 공식적인 이유는 그 친구 어머니의 반대 때문이었다. 내가 미국 가기 전부터 꾸준히 날 싫어하시던 분이다.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그의 어머니는, 내가 자신의 아들을 잡아먹을 사주라는 이유로, 나를 끔찍이도 싫어하셨다. 지금에야 그와 헤어진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내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 친구와 나는 노래방을 좋아했기에, 만나면 필수코스인 것처럼 노래방을 갔다. 나는 우리가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헤어졌다는 생각에 취해 ‘오르막길’을 불렀다. 아련한 멜로디 때문이었을까, 가사에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술기운이 올라와서였을까. 노래를 부르는데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훌쩍댔고 노래는 흘러갔다. 그때의 상황이, 분위기가 너무나 생생해서 나는 ‘오르막길’을 들을 때마다 슬픈가 보다. 그래서 나는 ‘오르막길'이 축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와 잠깐 사귀고 헤어진 이후 친구인 듯 아닌 듯 애매한 사이로 지낼 때 그가 말했다. 나에게 고백했을 때 자기는 사실 여자 친구가 있었고, 아직도 만나고 있으며, 이제 곧 헤어질 거라고. 거지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누군가의 바람녀였다. 그는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줘서일까? 그는 연락을 먼저 하는 사람이고, 나는 연락을 무시 못하는 사람이다. 그 후로 그는 나에게 진짜 친구로 지내자 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여자 친구 얘기를 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는 욕심이었고, 나는 미련이었다. 긴 시간 동안 사귀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애증이 쌓였나 보다. 이제는 그와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만나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이 더 희미해지겠지. 그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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