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하루 종일 땀 마를 일 없는 끈적한 하루였다. 희준은 짜디짠 몸을 이끈 채 목욕탕에 도착했다. 카운터에는 자주색 원피스를 입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뚱뚱한 여자가 있었다. 고기라도 먹었는지 입가는 번들거렸고, 다리 떠는소리가 카운터 작은 구멍 너머까지 들려왔다. 희준은 돈을 냈고, 주인은 키를 냈다. 목욕탕에는 쉬이… 하얀 김이 내뿜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희준은 공기를 가득 메운 하얀 김을 헤치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궁서체의 크고 뚜렷한 글씨였다. 회색 시멘트로 바른 두꺼운 외벽, 그 가운데에서 물을 내뿜는 용의 머리가 있는 용암탕의 태는 웅장했다. 타이틀에 걸맞은 뜨거운 기운이 팔팔했고, 탕 왼편에는 아무 소리 없이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희준이 탕 안으로 발을 넣으려는 순간 남자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네?”
희준이 물었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세차게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씨발 어쩌라는 거야.’
희준은 탕 안으로 발을 살짝 집어넣었다. 남자는 그 자리에 뿌리라도 박힌 것처럼 부동의 자세로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희준은 남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숨을 참아 모으며 머리끝까지 몸을 집어넣었다. 용암탕 안에 희준의 몸이 가득 차자 몇 소쿠리만큼의 물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물에서 머리를 뺀 희준은 남자를 힐끔 쳐다봤지만, 남자의 고개는 축 처져 있었다.
희준이 눈을 한 번 끔뻑.
남자에게서 빨간 물이 뿜어져 나왔다.
희준이 눈을 다시 한번 끔뻑.
남자는 사라지고, 빨간 물이 용암탕을 가득 채웠다. 용암탕은 용암 같은 태를 한 채 기포만 뽀글댔고, 희준은 눈을 끔뻑.
아니 눈만 끔뻑.
희준에게 허락된 움직임은 그뿐이었다. 끼익…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목욕탕에 퍼져 울렸다. 발걸음 소리가 김을 뚫고 희준 앞에 도착했을 때 희준이 마주한 건 카운터에 앉아있던 자주색 원피스 여자.
“18분 30초. 이 사람은 틀려먹었네. 의지가 이렇게 약해서야...”
희준은 무슨 말이냐 되묻고 싶었지만, 말은 입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여자는 들고 온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자기 얼굴만큼 큰 무지개 손잡이의 뜰채로 용암탕 안을,
휘-이.
휘-이.
휘-이.
단 세 번의 움직임으로 용암탕은 맹렬한 뜨거움을 내뿜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 가장 오래 버티면 돼요. 이츠 소 심플. 파이팅!”
희준은 눈만 끔뻑. 손이라도 뻗어, 아니 소리라도 내어 여자를 붙잡고 싶었지만, 희준이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눈만 끔뻑. 희준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던 남자가 떠올랐다. 남자의 고갯짓이 경이로웠다. 자신의 무시를 후회했다. 목욕탕은 여전히 하얀 김이 가득했고, 아무 소리도 없었다. 아니 공백 사이로 쉬이...
그리고 저벅 저벅 저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