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쉽게 돈 번 얘기 들어볼래?
얼마냐고?
10억.
이 행운은 사막에서 벌어졌어. 10억 번 여자 이름은 희경이야. 희경은 23살 12월에 딱 300만 원을 모아. 그러더니 인도를 가겠대. 자유를 느끼고 싶다나 뭐라나. 인도로 떠난 희경은 자이살메르라는 사막 도시에 가. 그곳에는 삼삼오오 모여 낙타 사파리를 하는 관광상품이 유행했는데, 희경은 그게 싫었대. 혼자서 사막 도시까지 왔는데 그런 물질적인 패키지상품을 이용하는 게 역설적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희경은 혼자 떠나. 낙타 한 마리랑 몰이꾼 아카쉬 한 명을 고용해서. 참 겁도 없는 여자야, 그렇지?
희경은 아카쉬를 따라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어. 밤이 깊어지기 전에 챙겨온 침낭을 펴고 앉아, 모닥불을 피웠대. 그런데 아카쉬가 이상한 거야. 계속 희경의 손을 잡으려 하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대. 희경은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지. 낙타 몰이꾼이랑 단둘이 사막에 온 걸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나 봐. 그런데 어쩌겠어, 이미 사막인걸.
희경은 아카쉬에게 자기 근처에 있지 말고 저쪽에 따로 자리를 잡으라 했대. 아카쉬도 엄청난 악인은 아니었는지 희경의 말에 입을 쭉 내밀고선 희경과 떨어진 곳에 모닥불을 피웠다고 하더라. 희경은 조금 안심하면서도 계속 아카쉬를 경계했대. 그런데 이게 웬걸. 저 멀리 낙타 울음소리가 들려서 보니, 낙타 살피고 온다던 아카쉬가 희경을 놔두고 저 멀리 도망을 가더래. 희경은 곧장 낙타를 따라 달렸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는 낙타를 어찌 잡겠어. 희경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대. 이대로 어떻게 혼자서 밤을 지새우나 싶었지. 아카쉬 개새끼를 수백 번 연발하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남자의 숨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대. 그 소리는 희경과 점점 가까워졌고, 희경은 모닥불에서 나무 하나를 빼 들어 남자를 위협했대. 그런데 남자가 좀 이상한 거야, 자기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남자는 손을 벌벌 떨면서 주머니에서 약통을 하나 꺼냈대. 그런 남자를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겠어. 희경은 서둘러 약 한 알 꺼내서 남자에게 먹였대. 3분의 1정도 남은 자신의 마지막 물도 다 먹였지. 약 먹은 남자는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대. 뜬눈으로 지새운 희경은, 그날 밤 평생 볼 별 다 봤다고 하더라. 별 쏟아지는 게 장관이었대.
선잠이 든 희경이 눈을 떴을 땐, 낙타무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더래. 낙타무리에서 한 남자가 내려 여전히 쓰러져있는 남자를 낙타에 태우더래. 희경보고도 계속 타라고 했지만, 희경은 한사코 거절했지. 그들이 어떤 놈인 줄 알고 타. 희경은 새벽부터 밤까지 걷고 걸어서 겨우 마을에 도착했다고 해. 사막 들어가는 길에 이곳 저곳 사진 찍어놓은 게 이정표가 됐길 망정이지. 어쩌면 그녀의 이야기는 저 깊은 사막 속에 영영 갇혔을지도 몰라.
희경은 자신이 짐을 맡겨 놓은 게스트하우스를 보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엉엉 울었다고 하더라. 그래도 희경의 젊은 피는 여전히 도전적이고 낙천적이었어. 이 모든 걸 경험이라 생각했으니까. 다음 날 희경은 게스트하우스 옥상 레스토랑에서 혼자 커리와 라씨를 먹었지.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즐기는 본인의 모습에 취한 상태로 말이야. 그런데 어떤 인도인 무리가 자기를 힐끔거리면서 속닥이는 거야. 그러더니 무리 중 한 명이 막 뛰어 내려가더래. 희경은 자기최면을 걸었지. ‘과민반응 하지 말자.’ 곧이어 우당탕. 누군가 뛰어 올라오는 소리에 희경은 불안했지. 자기를 위협하면 소리를 질러야 하나 뛰어 내려야하나 온갖 생각이 1초에 수십 개씩 지나가는 찰나에, 어제 자신이 물을 줬던 그 남자가 Thank you를 연발하며 눈앞에 나타난거야.
남자는 크샤트리아 계급 사람이었어. 남자 집안이 사업을 크게 해서, 계급이 높을 뿐 아니라 돈도 굉장히 많은 집이었지. 어찌 됐건 희경의 물 덕분에 살았다나? 남자는 생명의 은인인 희경에게 제대로 고마움을 표현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면서 뭄바이에 있는 자기 집에 초대하더래. 그런데 희경이 또 누구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젊은 피 아니겠어? 당연히 응했지. 그도 그런 게 그 남자는 그렇게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거든. 정말 그랬어. 사람이 순수해 보였거든, 때 묻지 않고. 관상이란 거 무시 못 하잖아. 아, 그니까 희경이 그렇게 생각했대.
웬걸. 희경은 태어나서 본 집 중, 그러니까 실제가 아니더라도 티비나 영화 속에서 본 집들 포함해서, 최고의 집을 봤대. 그 집에서 일주일간 먹고 자며 귀족의 삶을 누렸다고 하더라. 그렇게 풍족하게 놀고 떠나는 길에 남자가 목걸이를 하나 건네줬대. 자신을 살려준 작은 성의 표현이라면서. 노란 보석이 반짝이는 작고 귀여운 목걸이였어.
누구나 그랬을 거야, 작은 성의 표현으로 건네받는 목걸이는 그냥 목걸이라 생각할 수밖에. 그런데 ‘그냥’ 목걸이가 아니었던 거지. 서울에 돌아온 희경은 취업 준비에 바빴어.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24살이었거든. 그렇게 취직을 하고 돈을 벌고 적금을 들었지. 월세와 전세금에 맞춰 몇 번 이사하는 동안 목걸이는 여전히 그녀의 추억 상자에 들어있었고, 그녀가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에 이르러 그녀는 그 목걸이를 다시 들여다봐. 10년이라는 시간은, 희경이 목걸이에서 추억 말고 다른 걸 볼 수 있게 만들었지. 희경은 당장 금은방에 그 목걸이를 들고 가. 주인의 표정으로 제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느꼈대. 그렇게 몇 군데 돌아다닌 끝에, 그녀는 그 목걸이의 숨은 가치를 알게 됐어. 10억. 이야기 끝.
허무하다고? 허무하면 뭐 어때 이야기 끝에 꼭 뭐가 있어야 하나? 이 이야기는 어떤 여자가 운 좋게 10억 번 이야기일 뿐인데.
안 팔았을 걸 아직은? 그 추억이 더 희미해지면 팔지 않을까 싶어. 돈이 추억보다 필요할 때?
그 여자가 누구냐고?
나.
랑 가장 친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