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라, 자기들이여

단편소설

by 진부기

사람들은 말한다. 꿈을 위해서는 달려야 한다고. 얼마나 무거운 추를 달고 뛰어야 하는지, 누가 낙오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 없다. 그저 결승선에 도착한 이들에게만 꽂히는, 대단하다거나 혹은 운이 좋았다거나라는시선.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더 열심히 달린다. 그러다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회복하기에 나의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의 상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사람들은 저 멀리 뛰어가고, 그 사람들을 뒤쫓기 위해 상처가 회복되지도 않은 채 뛰다 보면, 상처는 덧나고 병든다. 그리고 무기력이 생겨난다. 무기력이 당연해진 세상에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단체가 탄생한다.


[기어라, 자기들이여]


5년 전 무기력을 경험하고 앓아누운 진미희 앞에 작고 빛나는 구의 형태가 나타난다. 지름 1cm 될까 하는 아주 작은 구였다. 빛은 그녀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그날도, 평소와 같았다. 점심은 늘 그렇듯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수프 봉지가 안 까졌고, 손이 미끄러지면서 수프 봉지는 TV 선반 뒤로 날아간다. 평소 같았으면 다른 컵라면을 꺼내 먹었을 테지만, 그 컵라면은 집에 남은 마지막 컵라면이었다. 그녀는 긴 막대기를 가져와 TV 선반 밑을 쑤신다. 나오라는 수프 봉지는 안 나오고, 사진 몇 장이 나온다. 5년 전 생기 있고, 젊으며, 날씬한 진미희였다. 거울을 보는 그녀에게 빛이 속삭인다.


“이때가 그립지 않아?”


그녀는 2개월 만에 30kg를 뺀다. 35년 평생 단언컨대 가장 힘든 일이 살 빼는 것이었다며, 역시나 다이어트를 성공한 사람은 독한 사람이니 멀리하는 게 좋다는 말을 덧붙이는 진미희다. 그녀는 다이어트로 생기 있는 미소와 늘씬한 몸매를 가지게 되었으나, 더불어 갖게 된 것이 있었으니, 주름이다. 주름은 시술로 약간 감춰지는 듯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자기 몸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뛰었다. 하지만 인생이 마음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으리, 그녀는 헛발질을 해 러닝머신에서 넘어지고, 그 이후로 쭉 한쪽 다리를 절게 된다. 예전의 그녀였으면 다시 한번 무기력을 경험했을 테다. 하지만 그녀는 다이어트의 영향인지 빛의 영향인지, 무기력을 경험하는 대신 [기어라, 자기들이여]를 창단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최대 50살로 보았고, 그녀는 노안 덕에 쉽게 [기어라, 자기들이여]의 일원을 모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이를 신뢰의 척도로 삼는다는 걸 증명하는 바였다. 어쩌면 그녀는 수장이 되기 위해 선택받은 자였는지도 모른다.


[기어라, 자기들이여]의 모토는 단 하나, 뛰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이 운동이든 인생이든 말이다. 순식간에 이 단체는 전 세계에 퍼진다.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에 지쳐있던 것이다. 단체의 회원 수 1억 명을 넘어서고, 단체의 입김 때문에 올림픽에서는 ‘기어가기’라는 종목이 생긴다. 누가 기어서 빨리 결승점에 도착하는지를 겨루는 종목이었다. 이 종목이 생기고 첫 올림픽에서 [기어라, 자기들이여] 회원들이 모든 메달을 차지한다. [기어라, 자기들이여]는 하나의 단체에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형태로 나아간다. 아직 왕의 제도가 있는 몇몇 나라들은 이 단체에 자신들의 영토를 바쳤고, [기어라, 자기들이여]는 하나의 국가보다 큰 위세를 떨친다. 이렇게 단체가 성장하기까지 딱 5년이었다.


무너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한 [기어라, 자기들이여]에 분열이 찾아오니, 모두 비교 때문이었다. 무기력을 벗어나고자 만든 [기어라, 자기들이여] 내에서도 비교가 생겨나고, 무기력이 싹텄다. 같은 뜻을 가지고 모인 이들이었지만, 모두가 달랐다. 게 중 잘난 사람, 더 잘난 사람이 있었고, 못난 사람, 더 못난 사람이 있었다. 무기력은 이 단체를 서서히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5년 만에 급성장하여 국가보다 큰 위세를 떨치던 [기어라, 자기들이여]는 8년 만에 급진적인 쇠락을 마주한 뒤, 10년 만에 해체된다. 훗날 사람들은 이 사건을 ‘빵 사건’이라 부른다.


빵 사건을 경험한 진미희 역시 무기력에 빠진다. 하지만 선택받은 그녀 앞에는 또 한 번 작은 구 형태의 빛이 나타나고, 그녀는 그들의 행성과 똑같은 행성이 우주 내에 있다는 뉴스를 본다. 평행우주라 발표된 이 연구에서, 해당 행성으로 5년 내 여행이 가능해질 거라 선언한다.

진미희는 이것이 기회라 생각한다. [기어라, 자기들이여] 해체에 미련이 있는 재력가들을 찾아가 후원금을 모금한 그녀가 5년간 모은 후원금, 100억이었다. 그녀는 사회 공헌자라는 직함으로 100억을 내고 그 행성에 첫발을 내디딘다. 이들의 행성보다 과학 기술이 떨어진 그 행성, ‘지구’라 부르는 행성이었다.


지구에서는 진미희의 존재를 매우 신기하게 여겼고, 진미희는 지구 내 각종 매스컴에서 대서특필 되지만, 찰나였다. 지구는 진미희의 행성보다 모든 게 더 빨랐고, 사람들은 진미희의 행성과 비교 불가로 열심히 달렸다. 진미희는 [기어라, 자기들이여]를 전파하려 애쓰지만, 비교의 뿌리가 너무나 거칠고 강하게 자리 잡은 지구에서 진미희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지구는 무기력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곳이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스스로 무기력을 벗어나야 했다. 기술의 부족으로 편도행 우주선을 타고 온 그녀는, 대한민국 서울시 관악구에 있는 봉일시장에서 30년간 성실히 어묵을 팔다 80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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