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희연이 그녀를 처음 본 건 서울대입구역 사거리 ABC마트 앞이었다. 두 번째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 KFC 앞, 세 번째는 강남역 5번 출구 던킨도너츠 앞, 네 번째는 종로5가역 스타벅스 앞. 희연은 생각했다. 그녀는 혹시 나를 쫓아다니는 망령 아닐까?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나는 그녀와 무슨 관계일까. 희연이 그녀에게 다가간 건, 다섯 번째 신도림역 광장에서 마주쳤을 때다.
희연이 그녀에게 조심히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그녀는 오른쪽 눈썹을 한껏 구긴 채 희연을 쳐다봤다. 올블랙의 펑키한 스타일, 빨간색의 브릿지,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오른쪽 허벅지 위에 있는 손바닥만 한 꽃 타투. 그녀는 희연이 기억하기에 충분할만한 이렇다 할 특징들을 지녔지만, 과연 그녀가 희연을 기억할지는 의문이었다. 30년 동안, 평범하다는 말은 희연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식어였으니까. 희연이 그녀에게 말했다.
“뜬금없을 수 있는데, 도를 믿으세요 같은 거 아니고요.”
“네?”
그녀가 귀에 꽂은 에어팟을 빼며 인상을 더 구기며 되물었다.
“아 미안해요. 뜬금없을 수 있는데 저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제 말은 저희가 오늘 다섯 번째 만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말을 거는 건데요.”
그녀는 뺐던 에어팟 한쪽을 다시 끼고, 한 숨을 가늘게 내쉬며 희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갈 길을 갔다. 여섯 번, 일곱 번을 지나 열 번째 마주친 오늘, 그녀가 희연에게 다가왔다.
“아줌마 뭐예요? 스토커예요?”
“일단 아줌마 아닌데...”
“왜 저 따라다녀요?”
“제가 진짜 평범했으면 우리가 서로 못 알아차렸겠죠?”
“뭔 개소리예요.”
“평범하지 않으니까 우린 서로를 알아본 거잖아요.”
“아 알겠네, 아줌마 신천지죠? 한 번만 더 마주치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그렇게 아세요.”
희연은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수첩과 볼펜을 꺼낸다. 수첩에는 그간 희연이 적어 온 문구들이 가득하다.
[열세 번째, 긴 생머리를 한 그자가 드디어 나를 인식했다.]
[열다섯 번째, 코에 피어싱 한 그녀가 드디어 나를 인식했다.]
[열한 번째, 왼쪽 팔 가득 타투가 있는 그자가 드디어 나를 인식했다.]
[열두 번째, 무지개 염색을 한 그녀가 드디어 나를 인식했다.]
.
.
.
희연이 수첩의 마지막 줄에 적는다.
[열 번째, 오른쪽 허벅지에 타투가 있는 그녀가 드디어 나를 인식했다.]
희연이 수첩을 덮어 가방에 넣는다. 평생 평범하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을 법한 먹잇감을 찾아 눈알을 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