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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un 30. 2021

지랄한다고 달라지지 않아

함께해서 반가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올해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 그중 40%는 사원-대리 실무자로, 35%는 차장-부장 관리자급으로, 25%는 CEO로 활동을 했다. 그 20년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눈에 띄게 일을 잘한 것은 아니지만 단언컨대 큰 소리를 낸 것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 후배 직원이나 협력사를 모두 포함해서이다. 기억에 남는 빡침 포인트가 명확하게 기억이 난다. 협력사에게 1번, 직원에게 2번.


대리, 차장으로 활동했던 시기 100명 규모의 나름 이름 있는 중소기업에 다닐 때에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요상한 고참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이런 회사는 없었다. 이곳은 군대인가, 회사인가'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고, 살벌한 말들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다행히 내가 속한 본부는 그나마 평화적인 본부여서 덜 욕을 먹기는 했지만 우리 본부에도 한 명의 빌런이 있었더랬다. 


주정뱅이 아버지에 주정뱅이 자식들이 나온다고, 그렇게 치를 떨던 후배들은 관리자급으로 올라가기가 무섭게 배웠던 스킬들을 시전 한다. 이른바 '완장질'은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하고 나면 그 효능감에 자연스레 빠지게 된다. 좋은 말로 설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이면, 큰 소리로 윽박지르면 10분도 안 걸려 금방 해결이 되기 때문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데, 과연 진짜 해결이 된 걸까?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앞에서는 빠르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다 이해한 것처럼, 진짜 잘못한 것처럼 행동하겠지만 당사자는 99%의 확률로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고, 뒤에 가서 엄청난 뒷담화의 향연이 벌어질 것이다. 꼰대라는 말이 고상하게 들릴만큼 악질 빌런들이 참 많았다. 


애초에 그들은 존경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겠지만, 어찌 되었건 저런 상사를 존경할만한 사람은 없다. 자기에게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탈출할 궁리만 하게 된다. 자연히 회사 업무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정말 좋은 자리가 나면 미련 없이 털고 떠난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렇게 지랄해서 얻은 결과는 겨우 후배들의 탈출 본능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일 잘하는 동료가 떠나가고 나면 남은 자들의 힘겨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반성을 하기는커녕 더 악랄하게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빌런의 기본 속성이므로... 그저 탈출한 자를 보며 부러움과 원망의 세월을 보낼 것이다.




이솝우화에서처럼 현실도 그러하다. 지랄을 퍼부으면 금방 고쳐지는 것 같겠지만 마음의 문을 점점 더 굳게 닫아버린다. 욕먹을 것이 두려워 사소한 실수를 감추게 된다. 그러한 사소한 것들이 모여 결국 큰 화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누적된 스트레스는 언젠가 터지게 마련이다. 그게 탈출이던, 반항이던, 밀고이던...


내 경우에는 아예 접근 방식을 달리했다. 일단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초기단계에서부터 충분히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설령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빠른 수습을 최우선적으로 한다. 돈과 시간이 얼마나 들어가건 간에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더 돌이킬 수 없이 되기 전에 선수습 후분석이 원칙이다. 수습을 한 이후에는 원인을 분석한다. 이때도 당연히 원인 분석이 우선이지,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회사를 움직이는 건 조직이고, 그 조직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회사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실수를 했다는 것은 조직의 잘못이고, 그것은 곧 회사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개개인들이 그 실수를 통해서 회사에 얼마나 손해를 입혔는지보다는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다만 같은 실수가 반복이 되거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실수라면 따져 물을 수 있다. 개인이 아닌 조직에게 묻는 것이다. 


서두에 내가 20년 동안 화를 낸 적이 3번이 있다고 했다. 그중 한 번이 협력사 대표님이었는데, 그 협력사는 우리가 원래 일하던 회사가 아니라 광고주가 찍어준 소위 '낙하산' 협력사였다. 인력수급을 담당하는 회사인데 자꾸 상식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광고주 눈치를 봐서 적당히 조율하며 가려했지만 그럴수록 더 막장으로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직접적으로 우리 직원들에게 역갑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전화로 심하게 언성을 높여 이야기했다. 이런 '앵그리 진절'을 처음 본 직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이다라며 통쾌해했다.




다 큰 성인들에게 지랄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반발심과 적개심만 유발할 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하며 방법을 찾아나가는 게 어른스러운 방법이다. 그러다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조용히 연을 끊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피붙이도 아니고 지랄까지 해가며 사람 만들어 보겠다는 알량한 꼰대질은 부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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