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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Aug 01. 2021

지옥에서 사옥까지 #009

창업 5년 만에 지옥에서 사옥까지, 스릴 넘치는 창업 드라마

#9-1. 2018년 7월


기적 같은 10억 펀딩을 완료하고 나니, 독일 프로젝트는 순풍에 돛 단 듯 순항했지만, 올해 초 야심 차게 준비하던 글로벌 게임 페스티발의 충격적인 취소를 경험해서인지 진혁은 대회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현지 호텔에 호텔비를 선지급하고, 300명 이상의 항공비를 송금하면서부터 행사 취소에 대한 불안감은 조금씩 잦아들었으나 규모가 워낙 큰 프로젝트였기에 열심히 모았던 현금 8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마이너스 통장의 2억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그마저도 추가적인 항공비와 호텔비, 인건비 등을 송금하고 나자 거의 턱밑까지 찼다.


이제 다음 주면 마이너스 통장 조차도 잔고가 사라질 위기가 임박했을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선금이 입금이 되었다. 무려 전체 계약 금액의 60%를 선금으로 그것도 달러로 통장에 입금되었다. 달러의 규모는 210만 USD로 한화로 약 23억에 달하는 큰돈이었다. 2017년 1년 매출이 20억이 채 안 되던 회사에서 프로젝트 한 개의 선금만으로 전년도 매출을 넘어서는 규모였다. 


진혁은 물론 모든 직원들은 처음 해보는 이스포츠 대회이고, 낯선 땅인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생소하고 두려운 경험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물론 매출이 어느 행사보다 크기도 했지만, 다른 회사 프로젝트의 아웃소싱이 아닌 우리의 이름을 걸고 하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능력과 실력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이전에 대기업 계열의 대행사나 다른 클라이언트와는 달리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있었다. 게임사-방송사-대행사-협력사간의 관계가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인 구조에서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력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보니, 각자 더 책임감 있게 프로젝트에 임하는 긍정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험한 말, 큰 소리, 말다툼, 윽박지르기, 고압적 지시와 같은 모습을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해외에서의 행사는 항상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한국에서라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한 일들도 해외에서는 큰 문제로 불거지기도 한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처럼 인건비나 물가가 높은 곳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실 한국처럼 안되는 게 없고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원래 그런 문화권에서 살았다면 전혀 느끼지 못할 답답함이지만 한국에서 오래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여유에 피가 말라가는 극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생판 처음 가본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무려 15일간 대회를 준비하며 진혁은 수백번 복장이 터지는 경험을 했지만 사전에 그런 상황을 대비하여 많은 대비를 했고, 다행히 한국인의 마인드에 준하는 독일 대행사를 만나 수많은 위기를 간신히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4개월 간 수많은 사람들의 고생과 노력에 힘입어 첫 글로벌 대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현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누적 뷰어십이 무려 1억 뷰에 달했다. 현장 관람객에게만 나눠준 인게임 스킨 세트는 중고 시장에서 100만원 이상의 고가에 거래가 되는 등 첫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개발한 게임이 글로벌 대회를 개최한 적이 없었던 터라 모두 성공 여부를 확신하기 어려웠으나, 보란 듯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첫 글로벌 대회가 성대하게 마감되었다. 


대회가 종료되고,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무대 앞에서 만난 진혁과 준호는 아무 말없이 긴 포옹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작년 부산에서부터 이어진 작은 인연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이 프로젝트의 성공만을 위해 달려온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굳이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9-2. 2018년 8월 1일


무려 4개월간의 대장정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처음 진행해보는 초대형 이스포츠 대회였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큰 사건 사고 없이 끝난 것만 해도 충분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진혁과 직원들은 성과를 자축하는 의미로 독일을 떠나기 전 마지막 선상파티를 열었다. 사실 선상파티라고 해봐야 강변 레스토랑의 앞에 정박된 조그만 바지선에서 분위기만 내는 정도였지만 모든 직원들은 잘 마쳤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기쁜 마음으로 축배를 들 수 있었다.  


베를린 강변의 한 선상 레스토랑


"각자 성격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살아온 과정도 다르고, 경험도 다른 우리였지만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큰 트러블 없이 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무사히 달려오게 되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살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맘껏 먹고 마시면서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고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 분들의 노력에 보답하고자 회사에서 조그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선물은 전체 항공 일정을 이틀 정도 뒤로 미뤘습니다. 숙소도 같이 연장했으니, 이틀간 독일 여행과 쇼핑을 즐기시면 되겠습니다. 또한 두 번째 선물은 소소한 여행 경비로 약간의 유로를 준비했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다니면서 유용하게 사용하시고, 영수증은 제출 안 하셔도 됩니다. 모두들 긴 시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 모두의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cheers!"


진혁은 대회를 마치기 며칠 전부터 몰래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직원들 모르게 한국행 비행기 일정을 이틀 뒤로 연기하였다. 물론 다른 핑계를 대고 조심스레 개별 스케줄들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직원들은 항공 일정이 연기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또한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 경비를 현금으로 지급할 목적으로 한국에서 약 8만 유로를 가지고 왔는데, 선수들에게 지급하고 남은 유로가 약 1만 유로 정도 되었다. 그래서 이 유로화를 직원들 여행경비로 나누어 주고 소진하기로 정했다. 1인당 300~700유로 정도이니 한화로 약 40만원~ 90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깜짝 선물에 좋아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진혁은 매우 뿌듯했다. 


진혁은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불과 2년 전 이맘때 회사를 처음 창업한 지 6개월 만에 자본잠식 상태에까지 들어갔던 회사가 정확히 2년 후에 이런 엄청난 기회를 만났고, 또 무사히 잘 마칠 수 있게 된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누군들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그런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행운은 아니다. 진혁은 인생 최대치의 행운을 모두 가져다 쓴 것이라 여기며, 지금의 기회를 어떻게 잘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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