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일상 01 - 혼술 아니고 홈술
제 브친 <교관> 작가님의 저 제목에 혹해서 들어가 읽어보았다. 조회수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면 치트키로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라는 것이었다. 한 번도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본 적이 없던 터라 언제 제대로 날 잡고 써봐야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injury time> 작가님도 댓글로 거들어 주셨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93#comment
폭발적 조회수의 마약에 빠져 본 지 오래되기도 해서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지난주 내 사랑 <트래버스>에 관한 글로 우연히 조회수가 터졌다. 탄력 받은 김에 맘 먹고 음식 관련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진첩을 뒤져보는데 지난날 우리가 먹었던 그 수많은 음식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올해로 만 18년째 결혼생활 중인 우리 부부는 잘하던 못하던 집밥을 주로 먹었다. 배달 음식을 즐겨먹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코로나가 터지고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지니 냉장고를 털어 즉흥 요리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흥건한 술과 함께...
우리 부부의 가장 큰 단점은 요리를 해놓고 사진 따위는 잊어버린 채 그냥 일단 먹고 보는 것이다. 한참을 먹고 나서야 '아차차! 사진~' 하며 뒤늦게 후회를 해봐도 이미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이다. 그래서인지 진짜 요리 사진이 없었다. 당장 어제만 해도 유튜브에서 본 새마을식당 7분 김치찌개 레시피를 보고 뚝딱 만들어서 네 식구가 맛있게 먹었지만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다는 슬픈 이야기...
그나마 몇 안 되는 멀쩡한 요리 사진을 공개해보려고 한다. 음.. '요리'라기보다는 '음식'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특히 비 오는 날이면 집에 있는 냉장고 속 재료들로 술안주를 만들어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이번 주 내내 가을장마 소식이 있던데, 아마도 내내 이런 음식과 함께 막걸리를 한잔 걸치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예상된다.
여름엔 누가 뭐래도 비빔면이다. 수납장에 고이 모셔놓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쫄깃한 면을 삶고, 우리만의 신비로운 양념장을 만들어 갖은 야채 송송 썰어 무심하게 올려놓은 지극히 평범한 비빔면. 거기에 올해 처음 집에 도입한 미니 제빙기에서 한없이 쏟아지는 얼음으로 토핑을 마무리하면 냉비빔면이 된다.
냉비빔면 옆에 영롱한 빛깔을 띄고 서있는 것은 천상의 조합 [막.사.홍]이다. 막걸리+사이다+홍초의 조합으로 우아한 자태만큼이나 환상의 맛을 보여준다. 비율은 대충 [막1 : 사 0.7 : 홍초 0.2] 정도 비율인데 그것은 개인의 취향대로 조율하면 된다.
비 오는 날엔 어김없이 전이 자글자글 부쳐진다. 식구들 모두 바삭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절대 크게 부치지 않는다. 두 아들 녀석이 바삭한 테두리를 먼저 골라 먹기 때문에 지름을 10센티 이하로 하는 게 우리 집 전의 핵심이다. 어릴 적부터 바삭이에 길들여놓은 내 잘못이다. 이것은 과자인가 파전인가 싶을 정도로 바삭하게.
파전엔 그냥 [막걸리+사이다+얼음동동]이다. 이것은 진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완벽한 조합이다. 홍초를 섞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간신히 이겨내고 플레인 [막.사]를 즐겼다. 이번 주 내내 가을장마가 온다는 소식이 있는데, 치과 치료를 불사하고 강행할 것이냐 참아낼 것이냐 그런 기로에 서있다.
최근에 배달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가계부가 휘청였다. 그렇다고 치느님을 영접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조리하기 쉬운 닭봉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닭봉을 먼저 우유에 담가 잡내를 빼고 물로 깨끗이 씻어 낸다. 튀김 가루를 아주 살짝 톡톡 묻혀서 1차로 자작자작한 기름에 담가 튀긴다. 어느 정도 구워진 상태로 2차 에어프라이에서 180도 10분 추가로 샤워해주면 끝. 이제 에어프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의 취향을 고려해 알아서 뿌려 먹을 수 있도록 불닭소스를 준비했다. 또 급히 먹느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으나 앵글 밖에는 당연히 우리 부부의 최애 맥주, 필라이트 후레쉬가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아무리 수입맥주 4개 만원이 맛있다 한들 필라이트 후레쉬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것저것 귀찮을 땐 그냥 냉동실에 쟁여 놓은 복고 삼겹살이다. 요즘 옛날 방식으로 냉동된 사각 삼겹살을 [복고 삼겹살]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판매를 하고 있다. 생삼겹도 맛있지만 이 복고 삼겹살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아무튼 삼겹살은 뭐가 되었건 그냥 맛있다.
이 역시도 먹느라 결국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뒤늦게서야 겨우 한 컷 건졌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삼겹살이라 집에 준비된 술이 없었다. 얼마 전 지인이 결혼 답례품으로 준 자가 양조 와인을 개봉했다. 그냥 와인은 잘 못 먹는 촌놈이라 이번에도 불변의 법칙, 사이다와 홍초를 섞어 보았다. 그 와중에 사이다도 없어서 오랜만에 축배 사이다를 꺼냈다. 이 조합으로 먹어보니 스파클링 레드 와인 느낌이 나서 나름 나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창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그냥 넘길 수 있으려나. 치과 선생님이 잇몸을 위해서 술을 줄여야 한다고 했는데 과연 나는 오늘 말 잘 듣는 착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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