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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Oct 01. 2021

Manner maketh man

세 남자의 '앉아쏴' 이야기

어제 이웃 작가인 뽀닥님의 <목마른 자가 변기 청소를 한다> 글을 보다가, 내 작가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둔 글감을 하나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https://brunch.co.kr/@greentomato555/224



우리 집 가족 구성은 나, 아내, 아들 2 (고1, 중1) 이렇게 4명에 18개월 사내놈 댕댕이 2마리까지 총 6 식구이다. 그중 아내는 유일한 여성이다. 우리 집의 철칙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앉아서 볼 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업 주부인 아내가 전적으로 청소를 맡아서 하는 편이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유일한 여성인 아내이자 엄마를 위한 배려이다. 


한참 우리 큰 아들이 사춘기 방황으로 우리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당시 서로 감정 상하는 싸움을 하다가도 화장실에 가서는 자연스럽게 앉아서 소변을 본다. 심각하게 싸우고 감정이 격해져 있다가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사춘기라고 그렇게 겁도 없이 대들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싸우다가 화장실에 가서는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라니... 물론 예의를 지켰다기보다는 아주 애기 때부터 해온 습관이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귀엽고 사랑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어떻게 모양 빠지게 앉아서 싸냐?"라고 반문하는 지인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최소 내 주변 지인들로만 리서치를 해봤을 때, 생각보다 그 비율이 높아 조금 놀랐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아내를 포함한 가족 내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얼어 죽을 '가오' 때문에 계속해서 스탠딩 자세를 고수한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그렇다고 내가 '앉아 쏴'의 전도사는 아니었으므로 굳이 설득하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면 연애와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하루만 살아봐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연애 때는 꽁냥 꽁냥 죽이 척척 잘 맞다가도 막상 같은 집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아주 사소한 차이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숟가락 방향, 치약 짜기, 휴지 거는 방법, 수건 개는 방법, 이불 펼치기, 화장실 사용 습관 등등 맞지 않는 부분이 속속 등장한다. 처음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맞춰 살아가지만 자주 반복이 되거나, 서로에게 미운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미워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공동생활이던 처음에 룰을 잘 정리해놓는 게 매우 중요하다. 회사에서는 보통 취업 규칙이나 우리 회사처럼 rule-book 등으로 여러 가지 규칙에 대한 정리를 해놓지만 가정에서까지 그런 룰을 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비슷한 성향과 습관을 가진 경우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미묘하게 다른 습관들이 자주 발견되는 경우에는 빠르게 룰을 세팅하는 게 도움이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정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한 규칙을 정해 놓으면 나머지 새롭게 생기는 부분들은 기준에 준해서 판단하고 새롭게 정하면 된다. 애초에 그런 규칙을 정해 놓지 않으면 매번 그런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어떤 계기로 터지게 마련이다. 배려하겠다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터지기 전에 확실하게 정해놓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셈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내가 이런 규칙을 매우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 오해를 할까 봐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규칙은 잘 정해 놓는 반면 실천은 잘 못하는 편이다. 특히 내 구독자 중에는 나의 아내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거짓을 말하면 안 된다. 맨날 화장실에 불 켜놓고, 물티슈로 식탁을 닦고는 그대로 두며, 자고 나면 이불을 모양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오는 아주 일반적인 사람에 불과하다. 단지 그저 '앉아쏴'는 까먹지 않고 잘 지키는 대한민국 매너남이라고나 할까? Manner maketh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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