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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an 03. 2022

오늘부터 중식 제공을 중단

2022년부터 회사 중식 제공 방식 변경

※ 다음 직장in 메인에 잠시 올라간 연유로 조회수가 갑자기 늘었습니다. 혹여나 자극적인 제목에 들어오신 분들이 계실까 싶어 자진 납세하려고 합니다. 사실은 중식 제공 '중단'이나 '폐지'가 아니라 제공 방식 변경입니다. 별 일 아닌 거 같지만 회사 차원에서는 중대한 결정 사항이라 별도 이슈로 한 번 다뤄보았습니다. 제목과 다소 다른 본문 내용에 마음 상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처음 회사를 시작했던 2016년 7월부터 지금까지 회사는 직원들에게 중식을 제공해왔다. 바쁜 일정 가운데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에서이다. 전 직장에서 후배들과의 식사 시간이 두려워 점심때마다 자리를 피했던 내 자신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월급이야 그들보다 많지만 용돈을 20만원 정도 받는 나로서는 직원들에게 밥 한 번 사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기 때문에 점심시간만 되면 거짓으로 없는 약속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나의 그런 경험에 비추어 회사를 처음 시작할 당시 하루 7000원의 중식 비용과 커피 한잔 3000원을 법인카드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직원 5명이던 시절 하루 5만원, 한 달이면 100만원, 1년이면 12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나름 대단히 큰 결단이었다. 하루하루 고전을 면치 못하던 마이너스 인생이던 시절이었기에 상당한 부담이었으나 월 100만원 점심 값도 해결 못 할 정도라면 빨리 접는 게 낫겠다는 판단으로 많은 주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식 제공을 지속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회사는 어느덧 안정화되어 중식대를 제공하는데 거의 부담이 없는 정도로 성장하였다. 식대는 시세에 맞춰 9000원으로 올라갔고, 직원도 20명을 넘어서자 1년에 중식대만도 3~4천만원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주요 프로젝트의 특성상 3개의 팀으로 나뉘어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당초 밥 한 끼 함께 먹자는 취지는 사라지고, 회사의 의무만 남게 되었다. 심지어 작년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한참 실시하던 시기에 재택 근무일에는 식대 제공을 하지 않았더니 소소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감염 우려와 왕복 교통비와 출퇴근 시간에 버리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는 차원에 시작한 재택근무였지만 식대 제공에 대한 불만이 나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소수의 의견이기는 했지만 나름 선의로 진행하던 일에 그런 의견을 들으니 나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의견일 수도 있다. 재택이지만 근무를 하는 것이고, 기존 원칙이었던 식대 제공을 요구하는 게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코로나로 회사의 재정 상황이 다소 어려워진 것은 물론 사실이었지만 그걸 구체적으로 직원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작은 것 하나라도 받아야 할 권리(?)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 탐탁지 않았을 수 있다. 거기까지는 내가 차마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었다. 당연히 직원들이 알아서 회사의 상황을 이해해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직원이던 시절에 회사를 위해서 내 권리를 스스로 반납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지. 잠깐의 서운함 뒤에 바로 반성을 했다. 이런 제도적인 부분의 사각지대를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다. 회사의 규모가 변해감에 따라 제도도 기민하게 변화했어야 했고, 미리 정중하게 공지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슬그머니 미뤄버렸다. 그래서 때마침 이야기가 나온 김에 팀장들과 장시간 회의 끝에 중식 제공 제도를 변경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회사 법인 카드로 식대를 결제하던 방식이었으나, 변경된 제도는 월급여에 식대를 포함해서 제공하는 방식이다. 금액은 연 200만원을 12개월로 나눠서 월급여에 포함한다. 이 경우 결국 급여가 올라가는 셈이므로 퇴직금에 대한 부분도 덩달아 올라가 회사에는 조금 더 부담이 커지게 되지만 그 정도의 비용은 감당할 체력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과감히 결단하게 되었다. 각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식사를 정하면 된다. 굶던지, 다이어트 식단을 주문하여 먹던지, 비싼 음식을 먹던지 이제 모두 개인의 자유이다. 처음이라 좀 어색하겠지만 금방 적응하리라 생각한다. 


중식대를 급여에 포함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기본 급여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어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 다소 유리하다는 점이다. 중식 제공하고 200만원 적은 연봉보다, 중식 미제공에 200만원 높은 연봉이 직원 채용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업계에서 나름 이름이 알려진 회사가 되었는데 별도의 인센티브가 있다고는 하지만 초봉이 너무 낮은 게 항상 걸림돌이었다. 


물론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있게 마련이다. 예전의 나처럼 고참들이 후배들과의 식사를 피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 제도로 변경하면서 직원들에게 단단히 사전 공지를 하긴 했으나 선배들이 후배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분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밥 한 끼 편하게 나누는 시간을 갖자고 시작한 우리의 중식 제도는 슬프지만 이렇게 5년 반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팀장들과의 오랜 마라톤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니 시간이 지나면 모두 완벽하게 적응하는 날이 오리라.


출처 : Deposit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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